김병기(1818∼1875)는 안동김씨로 호는 사영(思穎)이다. 헌종(憲宗) 13년(184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하에서 훈련대장과 육조(六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대원군 집정으로 한때 한직에 머물다가 다시 좌찬성에 올랐다. 장남 김용규는 참판을 지냈으며 장손 김승진은 세마(洗馬: 正九品)를 지냈다. 유물은 김병기와 부인, 아들 김용규, 장손 김승진의 복식이 포함된 일가의 유품 26점이다. 조복(朝服) 일습 중 의(衣) 1점, 상(裳) 1점, 대대(大帶) 1점, 수(綬) 1점이 있으며, 제복(祭服) 일습 중에 의 1점, 상 1점, 대대 1점, 수 1점이 있고, 흑사모(黑紗帽)와 백사모(白紗帽)가 각 1점, 단령(團領) 2점, 동다리 2점, 전복(戰服) 4점, 배자류 1점이 있다. 그리고 김병기 부인의 것이라 하는 원삼이 1점 있다. 이 밖에 호패와 술이 있다. 유품은 1968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1976년 후손에 의해 고려대학교에 기증되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영김병기 일가의 옷은 후손을 통해 전해져온 전세품이다. 일반적으로 조복과 제복의 경우 관(冠), 의(衣), 중단(中單), 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속품은 공동으로 이용하나 본 유물은 지정당시 부터 부속품이 조복과 제복으로 분리되어 소개되었다.
조복 일습 중 의(衣) 1점, 상(裳) 1점, 대대(大帶) 1점, 수(綬) 1점이 있으며 이중 대대는 수와 함께 부착되어 있다. 의는 붉은 색으로 만들어 적초의라고도 한다. 유물은 홍색의 세주(細紬)로 만들고 직령깃에 동정이 달렸으며 소매가 넓고 겨드랑이 아래로 긴 옆트임이 있다. 왼쪽길 가슴부분에 폐슬(蔽膝)이 부착되었는데 구한말 복식 간소화 정책의 영향이다. 옷의 크기는 길이 93㎝, 화장 83㎝, 뒷품 43㎝이다. 깃, 수구, 도련에 7.5cm 너비의 흑색선단과 사이에 흰색선이 가늘게 둘러져 있다. 상(裳)은 적초상(赤綃裳)이라고도 하며 홍색 세주로 만들었다. 길이가 77㎝이며 앞이 3폭, 뒤가 4폭의 형태이다. 가장자리에 흑색사(黑色紗)로 선단을 두르고 그 사이에는 흰색 실선이 둘러져 있다. 선단을 두른 후 위에서 아래까지 1㎝ 전후의 주름을 잡았으며 주름 잡힌 앞과 뒤를 허리 말기를 달아 연결하였다. 말기는 백색 공단이다. 수는 조복·제복 등을 입을 때 뒤에 달아 늘이는 장식물로서 후수(後綬)라고도 한다. 운학(雲鶴)과 반조(盤鵰), 연작(練鵲), 계칙(鸂鷘) 등의 문양으로 품계를 구분하였으나 후기에는 모두 운학으로 통일하였다. 지정된 후수는 대대에 부착된 형태이다. 길이 50㎝, 너비 27㎝의 홍색 공단(貢緞) 바탕직물에 청·황·청·백의 순으로 4쌍의 운학을 수놓았으며 그 아래로 길이 20㎝의 청사망이 드리워지고 좌우 옆에 홍색의 소수(小綬)가 달려 있다. 구한말의 복식 간소화 정책으로 대대는 후수와 함께 부착되어 있는데 대대는 백색 공단으로 만들고 가장자리에 흑선을 둘렀으며 허리 양끝에 흑색의 끈이 달려 있다.
제복은 일습 중에 의 1점, 상 1점, 대대 1점, 수 1점이 있다. 의는 흑색사(黑色紗)로 만들었으며 깃·도련·수구에는 백선을 가늘게 대면서 길과 같은 감으로 흑선(黑襈)을 둘렀다. 길이 76㎝, 화장 84㎝, 뒷품 44㎝이다. 깃은 곧은 깃 형태이며 백색의 동정과 단령깃 형태의 방식곡령을 달았다. 가슴부위에는 홍색 폐슬이 달려 있으며 혁대걸이용 홍색고리와 흑색 끈이 양 겨드랑이 밑에 달려 있다. 상은 홍색이며 길이 83㎝, 앞면 28㎝, 뒷면 33㎝로 주름이 아래까지 잡혀 있다. 후수는 3쌍의 운학을 수놓았다.
단령은 2점이다. 김병기의 단령은 구한말 복식간소화로 인하여 소매가 좁게 만들어진 착수(窄袖)형 소례복(小禮服) 겹단령이다. 겉감은 현청색 운문사, 안감은 남색 운문사로 만들어졌으며 길이 127㎝, 화장 77㎝, 뒷품 50㎝, 진동 25㎝, 수구 23㎝이다. 옆선에 달린 무가 두루마기무의 형태로 만들어진 특징이 있다. 김승진의 단령은 겉감은 홍색 화문사(花紋紗), 안감은 다듬이질한 홍색 세주로 만든 겹단령으로 소매가 넓은 광수형 단령이다.
동다리는 2점으로 모두 겹옷이다. 동다리는 조선후기 무관들이 전복이나 쾌자 안에 입던 소매통이 좁은 포(袍)로 뒷길의 중심선과 무 하단의 양옆이 트여 있고 소매부분이 길과 색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유물 겉감은 쌍용문사(雙龍紋紗)이며 주황색 길에 홍색 소매를 달고 남색 안감을 넣었다. 크기는 길이 116∼123㎝, 화장 73∼90㎝, 뒤품 43㎝ 정도이다.
전복(戰服)은 4점으로 겹옷 2점, 홑옷 2점이 있다. 깃이 없이 목둘레선이 타원형이며 소매와 섶이 없고 양쪽 무 하단의 양옆이 트인 것이 특징이다. 검은색 겹전복 1점은 길이 114㎝로 겉감은 흑색 쌍용문사, 안감은 홍색 쌍용문사로 만들었으며 남색 겹전복은 옆선에 안으로 들어가는 호주머니가 달려 있다. 홑전복 2점은 흰색의 사(紗)로 만들었다.
김병기 부인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원삼(圓衫)은 김병기가 호조판서가 되어 정부인(貞夫人) 가자(加資)를 받았을 때 하사받은 것이라고 한다. 원삼은 조선 후기 부인의 가장 중요한 예복이었으며 유물도 남아 있기 때문에 그 형태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유물 원삼은 녹원삼(綠圓衫)으로 겉감은 두록색 수복문단(壽福紋緞), 안감은 홍색의 화접란문단(花蝶蘭紋緞)으로 만들었으며, 겉면에 직금이나 금박 장식은 없는 대신 색동과 한삼이 직금단으로 되어 있다. 뒷길이 139㎝, 앞길이 120㎝로 전단후장형이며, 화장 91㎝, 뒷품 46㎝, 소매너비 77㎝, 진동 25㎝이다. 넓은 소매끝에는 4.5㎝ 너비의 홍색과 노랑색 직금단(織金緞)으로 색동이 2개 달렸고, 색동 끝에 백색 직금단으로 만든 한삼이 달려 있다. 겉과 안을 따로 만들어서 소매 배래선 부분만 한꺼번에 바느질 되고 다른 부분은 안쪽에 남색 운보문단(雲寶紋緞)으로 안단을 대고 연결해 한 벌의 옷으로 만들었다. 원삼 대대는 길이 345㎝, 너비 5㎝로 홍색공단으로 만들어 봉황문을 양면에 가득 금박(金箔)으로 장식되어 있다.
배자 1점은 청색 면(綿)으로 만들고 양옆이 완전히 트여, 겨드랑이 밑의 끈이 앞뒤를 연결하고 있다. 끈에는 놋쇠고리가 달려 있다. 앞의 두개의 끈으로 여미게 되어 있다.
그 외 백사모 1점과 흑사모 1점이 있다. 호패는 정동만(鄭東晩)의 흑각(黑角), 정철형(鄭哲涥)의 호양목(2점), 정인승(鄭寅昇)의 상아, 정기세의 상아, 배나무, 호양목 호패이다.
사영김병기 일가의 옷은 조선후기 삼대(三代)에 걸친 한 집안의 의생활을 통해 조선후기의 복식 유행을 확인할 수 있고 세대를 이어가는 세도가의 경제력과 권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