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화회(山有花會)는 1927년 토월회(土月會)의 간부였던 시인 노작(露雀)홍사용(洪思容)이 중심이 되어 박진(朴珍)·이소연(李素然)·윤성묘(尹星畝) 등이 창립한 연극회이다.
시인 홍사용은 시뿐만 아니라 연극에도 관심이 깊어, 일찍이 토월회에 가담하여 문예담당 책임자로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외국극을 번역하여 소개하는 한편, 창작과 연출에도 남다른 열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1926년 토월회가 재정난을 겪고 있을 때, 박진(朴珍) 등과 함께 새로운 신극단체 산유화회를 창단하여 신극 운동을 벌였다.
1927년 5월 20일 최돈영(崔燉瑛)이 출자한 돈 400원을 공연제작에 투자하여 조선극장(朝鮮劇場)에서 창립공연을 가졌으나 그 공연은 실패했다. 공연 작품은 홍사용 작·연출의「향토심(鄕土心)」과 이소연 번안·박진 연출「소낙비」였다.「향토심」은 소박한 귀향의식과 향토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하여 당시 나라 잃은 젊은이들의 자연에의 정착과 애국심을 고취하였던 작품이다. 번안극「소낙비」는 평단으로부터 비교적 긍정적 평가는 받았으나, 두 작품 모두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극단 산유화회는 단 1회 공연을 끝으로 해산되었다.
그 이듬해 5월 홍사용, 박진 등이 주축이 되어 다시 화조회(火鳥會)라는 신극단체를 창단했고, 극단 신흥극장(新興劇場)을 설립하였으나, 이 단체도 단 1회 공연을 올린 이후 해산되었다. 당시 출연진은 박누월(朴淚月)·윤시민(尹是敏)·이소연(李素然)·홍유화(洪琉火)·백소화(白笑花)·신백화(申白花)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