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시기나 소멸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18세기 이후의 문헌에 삼봉면(三峯面)으로 기재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시기에 소멸된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삼봉처가 있었던 지역에 삿갓골이라는 지명이 있는 점으로 보아 삼봉처의 기능이 삿갓 제작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는 삼봉면이 북쪽으로는 송동면, 서쪽으로는 인천의 비월지(飛越地)인 이포면과 남양부(南陽府)의 봉미면, 남쪽으로는 모지면과 인접하였다.
삼봉의 지명유래는 이곳 남쪽에 있는 삼봉산(三峯山)에서 나왔다. 동쪽의 화산(花山)에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인 융릉(隆陵)이 있었고, 남쪽의 건달산(建達山)에는 봉수가 있어 해안지방의 괴태곶(槐台串)·염불산(念佛山) 봉수와 연결되어 수원으로 직접 전달하였다.
당시에는 수원과 남양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하였으며, 안성천(安城川)의 지류인 유천(柳川) 유역의 넓은 평야에서 풍부한 농작물이 생산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삼봉면은 갈담면과 합하여 화성군 봉담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