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에 일제의 강압으로 체결된 을사조약을 계기로 국권상실의 위기를 직감하게 된 당시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은 국권의 회복을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구국을 위한 교육운동에 따라 사립학교의 설립붐이 일어나 1906년부터 1910년 말 사이에 전국적으로 수천여 개의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들 사립학교 중에는 중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도 상당수에 달하는 바 이들 중등교육을 실시한 사립학교 중에는 전적으로 중등교육만을 실시한 학교가 있었는가 하면 중등과·중학과·고등과 등의 중등교육과정을 개설하여 중등교육을 실시한 학교가 있었는데 삼숭학교는 후자에 속하는 사립학교의 하나이다.
『중외일보(中外日報)』(1930.5.19)에 따르면, 1899년 7월에 창립한 삼숭학교는 1929년부터 늘어난 학생 교육을 위해 기와 2층의 교사를 신축하고, 1930년 5월 15일 사립보통학교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1908년 9월에 중학과(中學科)를 증설하고, 중학과의 학생을 모집하여 중등교육도 실시하였다.
중학과의 수업연한은 3년이고, 입학자격은 연령 15세 이상 35세 이하로 신체가 건전한 자이며 입학시험과목은 산술(정수·분수), 작문(논문 및 국한문 교역), 지지(본국지지개요), 역사(본국사 대요) 등이다. 또 교과목은 수신을 비롯하여 국어·한문·작문·만국지지·지문학(地文學)·만국사·수학·산술·대수·기하·박물학·생리·화학·경제·법제·일어·도식(圖式)·창가·체조 등이었다.
삼숭학교는 진남포 지역 3.1운동의 주요 거점이기도 하였다. 진남포 3.1운동은 남강 이승훈이 진남포에 직접 내려와 105인 사건 때 함께 옥고를 치른 임치정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승훈은 임치정을 비롯해 진남포의 인사들과 만나 만세운동을 모의하였는데, 당시 삼송학교 교장 홍기황이 적극 찬동하여 2월 중순경 학교 건물에서 비밀모임을 가졌다. 이날의 결의에 따라 학교 등사기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했다.
목사이자 문인이었던 전영택이 삼숭학교에서 한때 교장직을 맡아 학교를 관리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잡지인 『신여성』을 창간하고 주간을 역임했던 김원주(후에 출가, 법명은 일엽),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 박인덕 등이 단짝 친구로 삼숭학교에서 수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