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월 22일 양우정(梁又正)이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에서 창간한 『연합신문(聯合新聞)』이 그 전신이다. 대판 2면제의 석간 신문으로 발행되던 『연합신문』은 친 정부계열의 신문을 자처하고, 이승만(李承晩)대통령에 대한 절대지지를 천명하였다.
6·25사변으로 잠시 휴간하였다가 1951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타블로이드판 2면으로 속간하였다. 1952년 4월 20일 자매 통신사로 『동양통신』을 창간하였다. 이 신문은 ‘정계야화(政界夜話)’라는 고정란을 두어 주필 정국은(鄭國殷)이 집필하였다.
정치·군사·경제 등 각 방면의 요인들의 공부나 사생활의 이면을 재치있게 취재하여 흥미위주로 폭로하는 등, 독특한 편집으로 화제와 이목을 모았으며 두려운 존재로까지 알려졌다. 그러나 1953년 8월 이른바 ‘국제간첩단사건’이 발생하여 정국은이 재일조총련 계열의 국제공산당원임이 드러나 사형됨에 따라 타격을 입었다.
또한, 사장 양우정도 1953년 체포되어 중앙고등군법회의에서 7년 징역형을 언도받는 등 수난을 겪었다. 1954년 3월 부사장이었던 김성곤(金成坤)이 인수하여 여전히 친 정부적인 성격을 지닌 채 발간하다가 1960년 4월의거 이후 중립적인 성격으로 전환하였으며, 그해 7월 11일자(제4024호)부터는 『서울일일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어 발행하였다.
체재는 대판 8면제로 조간과 석간으로 발행하였으며, 사주는 김성곤, 사장 겸 주필은 이관구(李寬求)였는데, 그뒤 사장에 이관구, 주필에 천관우(千寬宇), 편집국장에 김창문(金昌文)으로 개편하였으나, 당시 신문계의 증면경쟁을 이기지 못하여 1962년 1월 1일 자진폐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