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옥기현(玉岐縣, 또는 皆次丁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치도(馳道)로 고쳐 양록군(楊麓郡: 지금의 楊口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때 서화(瑞和, 또는 瑞禾ㆍ瑞城)로 고쳐 회양(淮陽)의 속현으로 하였고, 조선 세종 때 인제현에 속하였다. 1896년(고종 33) 인제군 서화면이 되었다.
서화의 지명유래는 관개가 편리하고 자연재해의 피해가 별로 없어 해마다 풍년이 들어 풍요한 들판을 이룬다는 뜻에서 나왔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이 인제와 금강산을 잇는 교통상 요로에 있었다.
원통리에서 서화천(瑞和川)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서화를 지나 응봉령(鷹峯嶺)을 넘어 금강산 입구의 장양(長楊)에 이르게 된다. 부근에는 인제군의 북창(北倉)이 있었고, 서쪽으로는 광치(廣峙)를 넘어 양구와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태백산맥의 진부령(珍富嶺)을 통해 동해안에 이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