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옛 지명.
내용
1371년(공민왕 20) 부여감무로 겸임하게 하였다가 1390년(공양왕 2) 다시 감무를 두었으며, 1414년(태종 14) 이산(尼山)과 합하여 이성(尼城)이 되었다. 다음해에 이곳이 고다진(古多津)으로 통하는 요충지라 하여 다시 나누고 현감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승격하여 군(郡)이 된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북면ㆍ정지면ㆍ삼산면ㆍ병촌면ㆍ우곤면은 논산시 성동면으로, 현내면ㆍ북면ㆍ증산면ㆍ비당면은 부여군 석성면으로 병합하였다.
석성의 지명 유래는 백제 때 이곳이 부여의 외곽지대를 이루어 군사상ㆍ교통상 요지여서 돌로 쌓은 석성이 즐비하다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백제 의자왕 때는 백제군과 나당연합군간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으며, 고려 우왕 때는 두 차례에 걸쳐 왜구가 침입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금강의 지류인 수탕천(水湯川) 변 저포(猪浦)에서 이곳의 물자를 모아 금강을 통해 경강(京江)으로 운반하였다. 육로상으로는 노성ㆍ부여ㆍ홍산ㆍ임천ㆍ용안 등과 연결되는 도로가 있어 교통상의 요지였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대동지지(大東地志)』
- 『충청남도지(忠淸南道誌)』(충청남도지편찬위원회,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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