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황해도 연백 지역의 옛 지명.
내용
원종 때 이곳 사람 이분희(李汾禧)가 위사공(衛社功)을 세웠다 하여 석주로 승격시켰다. 1308년(충렬왕 34) 다시 온주목(溫州牧)으로 승격시켰으나 충선왕 때연안부(延安府)로 강등시켰고 조선 태종 때연안도호부로 하였다.
이 지역은 고려시대에 개성 서쪽에 위치하여 해주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비옥한 연안평야의 물산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였다. 동음홀이 ‘큰 고을’이란 뜻을 갖는 것과 같이 이곳은 일찍부터 큰 취락이 발달했었다.
고려시대에는 개성 서쪽을 방어하는 군사기지의 성격을 갖기도 하였는데, 해안지방은 북부의 봉수가 전달되는 통로였으며, 진산이던 봉세산(鳳勢山)에는 산성이 있었다. 지금의 연안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한국고대국명지명연구(韓國古代國名地名硏究)』(이병선, 형설출판사, 198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