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실업계에서 활약할 능력을 기르고 일반 민중의 기풍을 이용후생의 방향으로 인도하는 데 그 설립이념을 두고 있다.
1899년 6월 「상공학교관제」가 공포됨에 따라 서울 명동에서 관립상공학교로 개교하였다. 1904년 9월 관립농상공학교로 개편되어 상과·공과를 두었다가 1907년 4월 상과가 독립하여 사립 선린상업학교로 개교하였다. 입학생은 관립상공학교의 상과생 5명과 새로 모집한 학생 50명이었다.
1908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2년제 야간 전수과를 설치하였으며, 그 뒤 상업교육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본과의 수업연한을 3년으로 개편하고, 1913년 4월부터는 일본인 학생을 별도로 선발하였다.
같은 해 11월서울 용산구 청파동 지금의 위치로 교사를 이전함에 따라 당시 교시였던 ‘진실강건(眞實剛健)·근면역행(勤勉力行)’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기틀이 조성되었다.
한편, 일제강점기 당시 3·1 만세운동에 대대적으로 참가하여 이규송 등 8명이 체포되기도 하였다. 이후 계속되는 일제의 차별교육에 반대하는 동맹휴학을 단행하였고, 광주학생운동 때에도 서울 지역의 연대투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1921년 본과 1부(일본학생), 1922년 본과 2부(한국학생)가 5년제로 개편되었고, 이러한 일제의 차별교육에 반발해서 한국인 학생 전원이 자퇴원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광복과 더불어 이정기(李廷紀)가 일본인으로부터 학교를 인수하였고, 1946년 학제개정에 따라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였다.
1947년 서울시에 인수되어 공립학교로 전환되었으며, 1951년 9월 「교육법」개정에 따라 선린상업고등학교와 청파중학교로 개편되고, 청파중학교는 1953년 선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68년 대만 위다고급상업가사직업학교(育達高級商業家事職業學校), 1984년 일본 간사이오쿠라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체결하였고, 상업과·회계과·무역과·정보처리과 4개 과로 편성하였다가 1989년 상업과·정보처리과 2개 과로 통합하였다.
1992년 상업경영과·상업디자인과·정보처리과로 편성하였으며, 1997년 선린정보산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2000년 인터넷정보통신과·웹운영과·전자상거래과·멀티미디어디자인과를 신설하면서 선린인터넷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9년 평생교육 시범학교에 지정되었고, 2001년 컴퓨터교육 우수학교, 2003 특별활동 우수학교, 2007년 특성화분야 우수 전문계 고등학교 등에 선정되었다.
2010년 현재 4개 과(정보통신과·웹운영과·테크노경영과·멀티미디어과), 36학급에 총 900여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교직원은 88명이 재직하고 있고, 102회 졸업식을 거치면서 총 4만 4,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창의적인 IT 분야 전문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학습자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 특성화 학교 운영 내실화, 세계화·정보화 능력 향상에 역점을 두고 IT 전문동아리 육성과 함께 학교기업, 독서능력 인증제, 사이버 교육 시스템, 영재교육원, 해외 유학반 등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연극부·마술부·보컬부·밴드부 등 일반 동아리와 네트워크반·e비즈니스반·그래픽디자인반·해커반 등 전문 동아리를 중심으로 계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2003년 청소년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 우수상, 제7회 전국청소년연극제 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1920년에 창단된 야구부는 1933년 전국대회 우승을 필두로 1969년 야구 4관왕 획득, 1980년 대통령배 및 청룡기 우승, 1985년 화랑대기 우승, 1995년 봉황대기 우승 등 전통의 강호로 자리하고 있고, 2002년 창단된 바둑부는 10여 명이 넘는 프로바둑기사를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