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조직된 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太平洋會議外交後援會)에 의하여 그 기관지로 발행된 주간신문이다.
주필은 장붕(張鵬), 기자는 장덕로(張德櫓)·김태연(金泰淵)·홍진(洪鎭)·이병관(李秉關)·김인전(金仁全)·양기금(梁起金) 등이었다.
창간사에서 “『선전』이 우리 독립사업에 급무임은 유구개언(有口皆言)이므로 일반이 차(此)를 갈망하고 기대하는바 금(今)에 본지를 『선전』이라고 명명함에 하등의 설명을 불요하고 임의 기(其) 의의를 통해(洞解)하리라.”라고 밝혔듯이 이 신문은 독립사업을 크게 선전할 것을 다짐하고 나섰다. 또한 “…… 하물며 동아평화(東亞平和)를 전제로 하는 태평양회의(太平洋會議)와 여(如)한 국제문제가 더욱 긴장되어…… 우리의 국제상 사활문제가 호흡에 재(在)한 금일에 우리의 선전사업을 어찌 주저하리오.”라고 하였듯이, 특히 국제관계 속에서의 우리나라의 독립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역설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신문은 소형신문으로서 주로 매주 토요일에 발행하였는데 국내사정을 알리는 내지통신란(內地通信欄)을 마련하여 의사(義士) 박치의(朴治毅)의 순국, 최남선(崔南善)의 출옥, 독립군의 소식 등을 보도하였다.
그러나 호수가 거듭할수록 외교활동의 공이 없이는 소기의 목적을 이룩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점차 그 활동이 미약해져 갔다. 정확한 폐간일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