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수묵이며 족자 형식이다. 크기는 세로 93㎝, 가로 61㎝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문인계회도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족자 상단에 “미원계회도(薇垣契會圖)”라는 전서체(篆書體)로 쓴 제목이 있고, 중단에 산수를 배경으로 계회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참석자들의 좌목(座目)이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 초기 계회도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좌목에 적혀 있는 참석자의 명단은 유인숙(柳仁淑, 14851545), 홍춘경(洪春卿, 14971548), 이명규(李名珪, 14971560), 나세찬(羅世纘, 14981551), 이황(李滉, 15011570), 김□(金□), 이영현(李英賢, 15071572) 등 7명이다. 미원(薇垣)은 사간원(司諫院)의 별칭이어서 사간원 관리들의 계회임을 알 수 있다. 그림에 성세창(成世昌, 1481~1548)의 찬시(贊詩)가 적혀 있고, “가정경자중춘(嘉靖庚子仲春)”이라는 연기가 있어 1540년(중종 35)에 제작되었음이 확인된다.
화면의 근경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는 언덕이 있고, 그 아래 널찍한 터에서 의관(衣冠)을 갖춘 선비들이 둘러앉아 계회를 열고 있다. 산수의 배경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 있게 표현되었다. 이에 비해 계회 장면은 작게 상징적으로만 그려져 있다. 자연을 중시하던 당시의 풍조가 잘 드러난다. 또한 계원들의 옆에 있는 큰 탁자 위에 술동이들이 놓여 있어 자연을 벗 삼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펴던 조선 초기 선비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다.
이 계회도에 그려진 산수화는 오른편에 치우친 편파구도(偏頗構圖), 확대된 공간, 짧은 선과 점들로 다루어진 산과 언덕의 묘사, 쌍송(雙松)을 비롯한 수지법(樹枝法) 등에 있어서 안견(安堅)의 작품으로 전칭되고 있는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즉 16세기 중엽에 유행하던 안견파의 전통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는 16세기 중엽에 안견파 화풍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으며, 그 화풍이 계회도를 비롯한 기록화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 계회도는 「성세창제시하관계회도(世昌題詩夏官契會圖)」 (1541년),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 (1542년) 그리고 일본의 『고화비고(古畵備考)』에 실려 있는 소세양(蘇世讓, 1486~1562) 제찬의 「한성부낭관계회도 (漢城府郎官契會圖) 」 등과 잘 비교된다. 또 16세기에 안견파 화풍을 구사한 기록화의 전형적인 양식과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