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신(鄭可臣)이 지은 『천추금경록(千秋金鏡錄)』을 민지(閔漬)와 권보(權溥)가 충렬왕의 명으로 증수(增修)하여 7권으로 편찬하였다.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고려사(高麗史)』민지전에 의하면 호경대왕(虎景大王) 이래 원종(元宗)까지를 서술하고 세계도(世系圖)를 첨가한 편년체 사서로 추정된다.
이 책은 1309년(충선왕 복위 1)에 『천추금경록』(원문에는 『금경록(金鏡錄)』)과 함께 원나라에 보내진 바 있다. 한편, 원 간섭기에 이와 같은 사서를 편찬한 동기는 원에서 고려 사신들에게 고려 역사에 관한 질문을 하는 데 대한 고려 지식인의 교양을 넓히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고려 전기의 왕과 왕실에 대한 칭호를 격하시켰던 듯하다. 『세대편년절요(世代編年節要)』가 왕명으로 『천추금경록』을 증수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371년(공민왕 20) 이색(李穡)·이인복(李仁復) 등이 왕명으로 『천추금경록』 또는 그것의 증수본으로 생각되는 『본조금경록(本朝金鏡錄)』을 증수하였던 것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