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악부 ()

한문학
작품
조선 후기에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악부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악부시.
개설

필사본. 작자의 문집인 『귤산문고(橘山文稿)』 가오악부조(嘉梧樂府條)에 「해동악부」 116수, 부록 5수 도합 121수와 함께 「소악부」 45수가 실려 있다. 규장각 도서의 『귤산문고』 필사본 16책, 『가오악부(嘉梧樂府)』 13권 7책과 이호영(李虎榮)이 소장한 『가오고략(嘉梧稿略)』 26책 등에 있다.

이유원 자신이 그의 소악부서(小樂府序)에서 분명히 밝혔던 것처럼, 신위(申緯)의 「소악부」 40수에 직접적으로 충격을 받아 지은 것이며, 신위의 「소악부」 양식을 모방하여 칠언절구의 한시 형태로 우리의 시조를 번역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이 소악부는 「양류지(陽柳枝)」·「하엽배(荷葉杯)」·「경루자(更漏子)」·「접연화(蝶戀花)」·「풍류자(風流子)」·「봉황대(鳳凰臺)」·「원랑부(沅郎婦)」·「남산수(南山壽)」 등 45수의 칠언절구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내용은 인생무상, 늙음의 탄식, 산수의 풍치, 조조와 유비의 전쟁고사, 이별과 사랑 등 인간이면 누구나 다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 정서를 추구한 것이 지배적이다. 이런 제재는 전대 일반 정형한시에서는 경염부박(輕艶浮薄)하다고 하여 금기시해 온 것들이기 때문에 특기할 만하다.

아울러 이 작품에서 수렴, 번역한 시조는 대부분 20종 이상의 시조집에 채록되어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작품이 당대 일반 민중과 시조 향유층에게 널리 알려져 보편화된 시조를 작품화하였음을 말해 준다.

시조를 한시로 번역하는 방식은 시조의 1·2구를 1행으로, 3·4구를 2행으로, 5구를 3행으로, 6구를 4행으로 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1구를 1행, 2구를 2행, 3·4구를 3행, 5·6구를 4행으로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공존하기 때문에 일정한 원칙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참고문헌

「조선후기소악부연구(朝鮮後期小樂府硏究)」(황위주,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83)
「이유원(李裕元)의 가오소악부(嘉梧小樂府)」(박복선, 『수련어문논집』6, 197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