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순

  • 역사
  • 인물
  • 삼국
삼국시대 신라에서 자식을 버려 노모를 배부르게 하려한 효자.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두진 (국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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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신라에서 자식을 버려 노모를 배부르게 하려한 효자.

개설

일명 ‘손순(孫舜)’이라고도 한다.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아버지는 학산(鶴山), 어머니는 운오(運烏)이다. 아버지가 죽자 아내와 더불어 남의 집에 품을 팔아 얻은 곡식으로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린 자식이 늘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므로 민망히 여긴 그는 부인에게 이르기를 “아이는 또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얻기 어렵다.”고 하면서, 자식을 버려서 어머니의 배를 부르게 하려 했다.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 북쪽 교외로 가서 묻기 위해 땅을 파다가 기이한 돌종[石鐘]을 얻었다.

부부가 이상히 여겨 나무 위에 걸고 두드려보았더니 그 소리가 은은하였다. 이 이물(異物)을 얻음은 아이의 복으로 생각한 그들은 자식을 업고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을 들보에 달고 두드리니 그 소리가 대궐에 들리었다.

왕이 종소리를 듣고 사자를 보내어 조사하여 그 사유를 자세히 알고는 “손순이 아이를 묻으려 하매 땅이 석종을 솟아내었으니 효는 천지에 귀감이 된다.”라고 하였다. 효행에 대한 포상으로 집 한 채와 해마다 벼 50석을 받았는데, 뒤에 그는 옛 집을 희사하여 절을 삼아 홍효사(弘孝寺)라 하고 석종을 안치하였다.

손순은 무산(茂山) 대수촌장(大樹村長)인 구례마(俱禮馬)의 후손이다. 모량리 사람인 그는 비록 가세가 기울었으나 6두품 귀족 신분이었다. 신라사에 손씨로서 진평왕의 후비인 승만부인(僧滿夫人)이 있고, 그밖에 역사적으로 활동한 인물로 이름이 전하는 것은 손순이 거의 유일하다.

참고문헌

  • - 『삼국유사(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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