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익

  • 정치·법제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해방 이후 맹호9호작전(고보이작전) 당시의 군인.
인물/근현대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38년
  • 사망 연도1968년
  • 출생지경상북도 경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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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맹호9호작전(고보이작전) 당시의 군인.

개설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리 460번지 출신. 월남전쟁시 대위로써 수도사단 제1연대 3중대장으로 맹호9호작전(고보이작전)에 참가하여 전사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맹호9호작전은 1968년 1월 2일을 기해 실시되었는데, 손태익대위가 지휘하는 3중대는 1월 22일부터 개시된 동작전 제2단계 6지역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최선봉 공격부대로 적 6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면서 계속 진격해 나아갔다.

그러나 나가이 찬 마을에 이르러 견고한 진지와 교통호를 구축하고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는 월맹 정규군 제3사단 18연대 9대대와 격돌하여 맹호9호작전개시 이래 최대의 격전이 전개되었다. 3중대는 장갑차와 전차를 앞세우고 진격하였으나, 유리한 지형지물을 이용한 적의 반격으로 오히려 아군의 전사자만 1명 발생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대장 손태익 대위는 장갑차에 탑승하여 적진으로 진입중, 적의 B-40 적탄통의 사격을 받아 연료탱크가 폭파되면서 차체가 전소되어 탑승했던 통역병과 통신병이 현장에서 전사하였고, 나머지 중대원들도 화상을 입었다. 이때 손태익 대위는 화염에 쌓인 장갑차에서 부하들을 차체 밖으로 끌어내어 생명을 구출하고 자신은 전사하고 말았다.

이러한 중대장의 분전으로 3중대는 적 10명을 사살하고, B-40 적탄통 1문과 AK 소총 3정, 그리고 SKS 소총 1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전사후 소령에 추서되었으며, 1968년 1월 23일에 충무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 - 『파월한국전쟁사』 4집(國防部戰史編纂委員會,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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