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신라의 위화군(喟火郡, 또는 上村昌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수창군(壽昌郡, 또는 嘉昌郡)으로 고쳐 상주(尙州) 소관의 군으로 하고 그 영현으로 대구ㆍ팔리ㆍ하빈ㆍ화원의 4개 현을 두었다.
고려 초수성군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경주부(慶州府)의 임내가 되었다.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설치하고 해안현(解顔縣)을 겸임하게 하였다. 1394년(태조 3) 감무를 파하고 대구의 임내로 하였다가 그 뒤 경주에 환속한 바 있었으나, 1414년(태종 14) 다시 대구에 복속되었다.
1910년 대구부(大邱府)가 생길 때 이에 병합되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대구부의 27개 면을 분할하여 수성군을 만들었다. 1980년수성구(壽城區)가 설치되었다.
수성동 안에는 당촌마을이 있는데 이곳에는 500년이 된 당나무가 있다. 이 당나무 아래가 조선시대의 사형장이었는데 사형을 받은 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아버지가 지팡이를 꽂아놓은 데서 싹이 생긴 나무라는 전설이 있다. 수성천변(壽城川邊)에 발달했던 이 지역의 북쪽에 성불산(成佛山)이 있는데, 이 산은 옛 수성현의 진산(鎭山)이며 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