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기도 김포 지역의 옛 지명.
내용
본래 고구려의 수이홀(首爾忽)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술성현(戌城縣)으로 이름을 바꾸어 장제군(長堤郡: 지금의 富平)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태조 때 수안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현종 때수주(水州) 임내에 속하였다. 1172년(명종 2) 감무를 설치했으나, 1391년(공양왕 3) 감무를 설치한 통진현(通津縣)에 병합되었다.
수안이라는 지명은 진산(鎭山)이었던 수산(守山)에서 나온 것으로 보며 이곳에는 옛 산성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봉수가 있었다. 남쪽의 약산(藥山) 해변은 조선시대에 소금생산이 많았고 손돌목(孫乭項)이 있는 덕포진(德浦鎭)은 대안의 초지진(草芝鎭)이나 광성보(廣城堡)와 함께 서울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기지였다. 지금의 양촌면과 대곶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 『한국지지(韓國地誌) -지방편(地方篇)Ⅰ-』(건설부국립지리원, 1984)
- 『한국지방행정사(韓國地方行政史)』(내무부, 1966)
- 『한국지명연혁고(韓國地名沿革考)』(권상로, 동국문화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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