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수이홀(首爾忽)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술성현(戌城縣)으로 이름을 바꾸어 장제군(長堤郡: 지금의 富平)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태조 때수안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현종 때수주(水州) 임내에 속하였다. 1172년(명종 2) 감무를 설치했으나, 1391년(공양왕 3) 감무를 설치한 통진현(通津縣)에 병합되었다.
수안이라는 지명은 진산(鎭山)이었던 수산(守山)에서 나온 것으로 보며 이곳에는 옛 산성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봉수가 있었다. 남쪽의 약산(藥山) 해변은 조선시대에 소금생산이 많았고 손돌목(孫乭項)이 있는 덕포진(德浦鎭)은 대안의 초지진(草芝鎭)이나 광성보(廣城堡)와 함께 서울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기지였다. 지금의 양촌면과 대곶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