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에 체결된 을사조약을 계기로 국권상실의 위기를 감지한 당시 한민족의 지도자들은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1906년부터 1910년말까지의 기간에 전국에 걸쳐 수천여개의 사립학교가 설치되었는 바 이들 사립학교 중에는 농업·공업·상업 등 실업기술교육을 실시한 교육기관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공업분야의 기술교육을 실시한 교육기관 중에는 측량술에 관한 교육을 실시한 실업교육기관이 비교적 많았는데 수진측량학교도 측량술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의 하나이었다.
1908년 5월에 측량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교육할 것을 목적으로 종로구 수진동에 있던 흥사단에 수진측량학교를 설치하였다.
1909년 2월에 대한측량총관회(大韓測量總管會)와 연합하여 제반설비를 확장하고 제2회 신입생을 모집하였다.
사립측량학교인 수진측량학교는 수업기간이 6개월이고, 입학자격은 국한문의 독서·작문·산술(4칙 이내)등의 학과시험 합격자로 하였으며, 교육내용은 측량학술과 실습이었다.
교사진은 일본의 동경공수학교(東京工數學校) 졸업자인 김택길(金澤吉)과 김두섭(金斗燮), 일본의 동경참모본부에서 측량학을 공부한 이주환(李周煥) 등이었다.
제2회 학생의 수업기간은 9개월(제1기 6개월, 제2기 3개월)이었는데, 학과목은 제1기에 산술·기하·대수·삼각이고, 제2기에 측량(세부·도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