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1083년 7∼10월. 초명은 왕휴(王烋), 이름은 왕훈(王勳)이며, 자는 의공(義恭)이다. 문종의 맏아들이고, 어머니는 인예태후(仁睿太后) 이씨(李氏)이며, 비(妃)는 평양공(平壤公) 왕기(王基)의 딸 정의왕후(貞懿王后), 김양검(金良儉)의 딸 선희왕후(宣禧王后), 이호(李顥)의 딸 장경궁주(長慶宮主)이다.
1054년(문종 8) 2월에 태자에 책봉되었다. 1083년 7월에 문종이 죽자 유명(遺命)을 받들어 즉위하였고, 좌습유 지제고(左拾遺知制誥) 오인준(吳仁俊)을 요나라에 파견하여 문종의 부고를 알렸다. 같은 해 8월에 신봉루(神鳳樓)에 나가 대사령을 내렸으며, 10월에 회경전(會慶殿)에서 3일간 소재도량(소재도장)을 베풀고 중 3만 명에게 음식을 먹였다[반승(飯僧)]. 어려서부터 질환이 있어 허약하였는데 여막(廬幕)에서 슬퍼한 나머지 더욱 쇠약해져 동복 아우인 국원공(國原公) 왕운(王運: 선종)에게 임시로 나라의 일을 맡도록 하였다. 재위 3개월만인 같은 해 10월에 죽었으며, 향년 37세였다.
시호는 선혜(宣惠)이며, 능은 성릉(成陵)으로 개성시 개풍군 상도면 풍천리 풍릉동에 있다. 이후 인종 18년에 영명(英明)으로, 고종 40년에 정헌(靖憲)으로 시호를 더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