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책으로 이루어졌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예종은 학문을 좋아하여 일찍부터 문학과 학문에 대한 소양을 쌓으며 문치(文治)에도 힘을 써왔다. 송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궁중 학문연구기관인 청연각(靑讌閣)·보문각(寶文閣)을 두어 경연과 저술에도 힘을 쓰는 등 사회전반에 걸쳐 제도를 정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이르러 사회기강이 해이해짐과 함께 가뭄으로 기근이 잦고, 탐관오리의 농민수탈과 농민들의 유리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등 고려 전기 귀족사회체제의 한계성이 노출되었다.
이 책의 찬진이 이러한 예종대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책명(冊名) 등으로 미루어보아 당시의 정세에 대한 신하들의 대책을 요약한 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