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암흑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교양과 지식을 주입시켜 새 가정을 만들어나갈 자질을 함양시키고자 간행된 여성 계몽지였다.
1933년 1월 송진우(宋鎭禹)가 사장이었던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하였으나, 대외적으로는 영업국장이었던 양원모(梁源模)를 발행인으로 내세웠다.
A5판 크기의 200면 내외의 체재였던 이 잡지는 여성 독자를 위하여 제목만이 국·한문혼용이었을 뿐 본문은 순한글로 편집되었던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창간호는 이은상(李殷相)이 편집장을 맡고 여기자인 김자혜(金慈惠)가 취재 등 실무를 맡았으며, 1935년 4월호부터는 변영로(卞榮魯)가 편집장의 일을 하였다.
또한, 이상범(李象範)도 창간호의 표지와 연재소설의 삽화 등을 그리면서 『신가정』의 제작에 참여하였다. 매호 20전 정가로 판매하였던 이 잡지는 자체의 편집·제작 외에도 요리·편물·염색 등에 관한 강습회와 아울러 부인습률대회(婦人拾栗大會)·부인원유회(婦人園遊會) 등의 행사를 벌여 잡지 발간 목적을 간접적으로 충족시키기도 하였다.
이 『신가정』은 당시의 「신문지법(新聞紙法)」 허가잡지가 아닌 「출판법」에 의하였기 때문에 원고나 교정쇄를 일본총독부에 제출하여 사전검열을 받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1936년 8월 『동아일보』가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무기정간처분을 당하게 되자 『신동아』지와 더불어 1936년 9월 1일 통권 제45호로 강제 폐간되고 말았다.
당시 여성들의 벗이었던 『신가정』은 폐간 31년 만인 1967년 11월 동아일보사에 의하여 『여성동아(女性東亞)』라는 이름으로 복간되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