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사는 강원도 고산군 외금강면 금강산에 있는 조선시대 왕실 원당 사찰이다. 유점사의 말사였다. 519년에 보운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이는 후대에 가탁된 전승이다. 조선시대에 왕실 원당 사찰로 지정되었다. 한국전쟁 때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3층 석탑과 만세루의 석주 몇 개와 석조만 남게 되었다. 이후 북측과 남측이 신계사 복원 사업을 진행하여 2004년부터 2007년 10월까지 대웅전과 명부전을 비롯한 나머지 11개 전각을 복원하였다.
신계사(神溪寺)는 외금강(外金剛)에 위치하며, 고성항에서 남쪽 5㎞ 거리의 강원도 고산군에 속한다. 이 절은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 따르면 519년(법흥왕 6)에 보운조사(普雲祖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절 옆에 있던 신계천에서는 고기가 많이 잡혔는데, 살생으로 성역(聖域)의 참된 뜻을 더럽힌다고 하여 보운조사가 용왕(龍王)에게 부탁해서 고기를 다른 곳에서 놀도록 하였다. 그 신이로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신(神)’이라는 한자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신계사(新戒寺)로도 표기한다. 그러나 519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이며, 삼국시대에 제작된 유물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후대에 가탁된 전승이다. 대웅전 터 남쪽에 남아 있는 3층 석탑의 제작 시기가 9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므로, 9세기 중엽에 중창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786년(원성왕 2)에 태능(泰能)이 중건하였고, 886년(정강왕 1)에는 한림왕(翰林王)이 중수하였다. 918년(경명왕 2)에 법인국사(法印國師)가 중수하였고, 1130년(인종 8)에 묘청(妙淸)이 중건하였으며, 1332년(충숙왕 복위 1)에는 우심(尤深)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452년(문종 2)에 해파(海波)가 중건하였고, 1485년(성종 16)에는 지료(智了)가 중수하였으며, 1531년(중종 26)에는 유환(宥還)이 시주를 얻어 중건하였다.
1597년(선조 30)에는 강원감사 황융중(黃隆中)이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 버린 절을 중건하였고, 1669년(현종 10)에는 석철(石喆)이, 1711년(숙종 37)에는 청휘대사(淸暉大師)가 각각 중건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초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유람기에 따르면 신계사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1789년(정조 13) 정조의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원당으로 삼았으므로 다시 중창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왕실의 지원을 받아 신계사와 주변 암자에 대한 중수를 여러 번 단행하면서 사세가 확대되었고, 금강산의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가 되었다.
1821년(순조 21)에는 유신(宥信)이 향로전을 중수하였고, 1835년(헌종 1)에는 조정(朝廷)으로부터 주1을 받아 절 전체를 중수하였다. 1869년(고종 6)에 동하성의(東河性宜)가 영산전(靈山殿)과 첨성각(瞻星閣)을 건립하였고, 1874년(고종 11)에는 취암(翠巖)과 의성(義惺)이 적묵당(寂默堂)을 중건하였다. 1880년(고종 17)에는 의성과 지담(止潭)이 유리전(瑠璃殿)을 중수하였다. 1887년(고종 24)에 대웅전을 중창하고 영산전을 옮겨 지었으며, 1893년(고종 30)에 칠성각을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본말사 제도에 따라 유점사(楡岾寺)의 말사로 편입되었으나, 여전히 금강산의 대표적인 사찰로 여러 산내말사를 관할하며 사세를 유지하였다. 1914년 대향각(大香閣)을 중건하였으며, 1919년에는 김우화(金雨化)가 최승전(最勝殿)을 건립하였다. 1922년 12월에 용화전(龍華殿)이 화재로 모두 불탔다. 1923년에는 절에서 철기점을 설치하여 대종과 중종, 보광암종, 문수암종을 중수하거나 주조하였다. 1929년에 만세루(萬歲樓)를 중건하였다. 이후 화재로 소실되어 1945년경에는 반야보전(般若寶殿)과 나한전, 칠성각 등의 전각과 반야보전 앞의 석탑 1기만 남아 있었다.
건물들은 대웅전과 만세루를 남북 중심축으로 하여, 뒤의 대웅전 구역과 앞의 만세루 구역으로 나누어 배치하였었다. 대웅전 구역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에 3층 석탑이 두고, 동쪽으로 칠성각과 대향각, 극락전을, 서쪽으로 나한전[영산전]과 어실각을 일정한 사이로 배치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3층 석탑과 만세루의 석주 몇 개와 석조만 남게 되었다.
이후 1998년 3월 14일에 체결된 「금강산 문화재 복원을 위한 합의서」를 바탕으로 남측의 ‘금강산신계사복원추진위원회[한국불교종단협의회]’와 북측의 ‘조선불교도연맹’이 공동으로 신계사 복원 사업을 진행하였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지표조사 및 발굴 조사를 여섯 차례에 걸쳐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4년 11월 대한불교조계종과 현대아산,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이 공동으로 대웅전을 복원하였고, 명부전을 비롯한 나머지 11개 전각도 2007년 10월에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