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나오는 지명이다. 여섯 개의 가야가 대가락국(大駕洛國)의 수로왕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우고자 할 때 그 수도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왔는데, 나라의 영토가 지리산ㆍ황산강(黃山江: 지금의 洛東江)ㆍ가야산 등에 이르므로 이를 다스리기에 적합한 곳이라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43년(유리왕 20) 가궁(假宮)의 남쪽 신답평으로 정하여 수로왕이 이곳으로 행차하였는데, 갈대가 우거져 있고 땅이 협소하여 여뀌잎[蓼葉] 같으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경치가 빼어나므로 수도로 정하였다. 신답평은 ‘한전(閑田)을 새로 일구어 논[畓]을 만든다’는 뜻을 가졌으며, 평(坪)은 ‘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