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는 1931년 11월에 창간되었으며, 당시의 사장은 송진우(宋鎭禹), 편집 겸 발행인은 양원모(梁源模), 주간은 주요섭(朱耀燮)이었다. 처음에는 B5판 113면, 2호부터 200면 내외이었다가 6권 4호(54호)부터 A5판 300면 내외로 증면하였다.
송진우의 창간사에서 보듯이 신동아는 “조선민족의 전도(前途)의 대경륜을 제시하는 전람회요, 토의장이요, 온양소(溫讓所)”임을 자처하였다. 또, 발행의 주지는 ‘조선민중의 표현기관으로서의 자임, 민주주의의 지지, 문화주의의 제창’이었다.
이 잡지의 특색은 비교적 많은 지면(200∼300면)에 다양한 집필진(500명 내외)을 동원하여 시의적절하게 특집호를 꾸며 내용이 풍부하다는 점에 있었다. 값도 30전에 불과하여 창간호는 2만부나 매진되었고, 그 뒤에도 계속 1만부선을 유지하다가 1936년 9월 1일 이른바 ‘일장기말소사건’으로 통권 6권 6호 (59호)로 폐간되었다.
그 뒤 동아일보사에서는 1964년 8월에 창간 당시의 취지를 살려 9월호로 다시 복간하였다. 복간 당시의 발행인은 김상만(金相万), 편집인은 고재욱(高在旭), 주간은 천관우(千寬宇)였다. 판형은 A5판에 400면이었다. 내용도 다양하게 꾸며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어 국내 종합지로서는 최장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 잡지의 출현으로 이른바 ‘신문잡지시대’를 열게 되었는데, 정치·경제·사회·학술·문예 등 시사·평론에서부터 과학·운동·연예·취미에 이르기까지 지식과 견문을 넓히고 실익을 얻는 것이면 모두 취하였다. 시종일관된 이러한 방침은 장점인 동시에 때로는 불통일성·산만성·수박겉핥기식 천박성에 기울기도 한 결함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