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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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에, 만주 한국인촌에서 신민부의 기관지로 창간한 교민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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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5년에, 만주 한국인촌에서 신민부의 기관지로 창간한 교민 신문.
내용

북만주 충동로(虫東路) 석두하자(石頭河子)의 한국인촌에서 신민부(新民府)의 기관지로서 창간되었다. 편집인은 허성(許星)이었으며, 순간으로 발행되었다.

1925년 8월 29일자 제12호에서는 「제15회 국치일(國恥日)에 임하여」라는 제목의 사설과 함께 각지의 민족운동실태와 상황을 크게 보도하였다. 또 충동로 지방소식으로 그곳에 청년회가 조직되었다는 등의 소식을 보도하였다.

또한, 상해거류동포들의 소식과 상해의 3·1학교 설립기사 등도 상세히 보도하였는데, 3·1학교는 해외동포들이 중국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중등학교 수준의 것으로, 김규식(金奎植)·최창식(崔昌植)·여운형(呂運亨) 등이 주재한다고 보도하였다.

이 신문에 대해서는 순간지라는 것 외에, 판형이나 활자체에 관한 명확한 기록이나 문헌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한국신문사연구』(이해창, 성문각,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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