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만주 충동로(虫東路) 석두하자(石頭河子)의 한국인촌에서 신민부(新民府)의 기관지로서 창간되었다. 편집인은 허성(許星)이었으며, 순간으로 발행되었다.
1925년 8월 29일자 제12호에서는 「제15회 국치일(國恥日)에 임하여」라는 제목의 사설과 함께 각지의 민족운동실태와 상황을 크게 보도하였다. 또 충동로 지방소식으로 그곳에 청년회가 조직되었다는 등의 소식을 보도하였다.
또한, 상해거류동포들의 소식과 상해의 3·1학교 설립기사 등도 상세히 보도하였는데, 3·1학교는 해외동포들이 중국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중등학교 수준의 것으로, 김규식(金奎植)·최창식(崔昌植)·여운형(呂運亨) 등이 주재한다고 보도하였다.
이 신문에 대해서는 순간지라는 것 외에, 판형이나 활자체에 관한 명확한 기록이나 문헌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