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신라의 가시혜현(加尸兮縣)이었는데, 경덕왕 때신복현으로 고쳐 고령군(高靈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그 뒤의 변화는 자세하지 않고, 현의 서쪽 10리 되는 곳에 가서곡(加西谷)이 있는데 시혜(尸兮)가 변하여 서(西)가 된 것으로 추측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령군조에 기술된 이 기록은 『대동여지도』상의 신복의 위치와는 다르다. 고령 서쪽 10리 지점은 가야산 줄기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골짜기에 해당되므로 가서곡의 설명에 부합되나, 가시혜는 고대어의 어형 표기로 보아 ‘들’의 의미에 가까우므로 지도상에 나타난 신복의 위치가 맞는 것으로 본다. 지도상에는 신복이 낙동강의 본류와 지류인 대가천(大加川)의 합류지점의 넓은 들에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신복현이 있었던 당시에는 북쪽으로 대가천 상류의 고령과 접하고, 남쪽은 소학산(巢鶴山) 줄기에 의하여 창녕현과 경계를 이루었으며,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현풍(玄風)과, 서쪽은 합천(陜川)의 경계를 지나 북쪽의 가야산해인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금의 고령읍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