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10월에 폐간되었다. A5판. 내려쓰기 체재이며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하였다. 외국 선교사들에게 독점되어 왔던 기독교문서운동의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민간인이 출자한 조선기독교 창문사(彰文社)가 1923년 1월에 창설되었는데, 그 첫 사업으로 만들어진 잡지이다.
잡지의 방향은 신학적으로는 자유주의적·진보주의적 성향이었고, 사회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었기 때문에, 당시의 보수적 신앙노선과 외세 의존세력에게 강력한 도전세력이었다. 3·1운동의 영향력이 강했던 시기에 나온 잡지였으므로 민족의식과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일제의 압력을 피하기 위해 편집 겸 발행인은 선교사 쿤스(Koons, E. W., 君芮彬)로 정했다.
활동한 주요 인사는 감리교의 전영택(田榮澤), 장로교의 송창근(宋昌根)·채필근(蔡弼近) 등이었다. 편집인은 쿤스에서 박승봉(朴勝鳳), 김지환(金智煥), 홍병선(洪秉旋)의 순으로 바뀌었고, 발행인도 쿤스에서 겐소(Genso, J. F., 金炤), 반하르트(Barnhart, B. P., 潘河斗)의 순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일제의 계속된 탄압과 방해 때문이었다.
잡지에 실린 대표적인 논문은「조선 사람과 기독교」·「조선 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책임」·「조선기독교의 장래와 신앙문제」·「사회문제에 대한 예수의 기여」 등과 같이 기독교신앙과 민족문화와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었다. 3·1운동 후 팽배해진 사회주의사상의 압력에 대처하고 침체된 한국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만들어진 이 잡지는 3·1운동 후 한국 교회 내의 자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