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뒤에 통례원우통례(通禮院右通禮) 등이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92년에 유생으로 사도세자(思悼世子)에 관한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를 올린 일이 있는데, 1800년 소의 우두머리인 이우(李瑀)가 유배되자,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다가 뒤에 재등용되었다.
또, 곽재우(郭再祐)의 창의변무(倡義辨誣: 의병을 일으킨 일에 대한 변증)와 채제공(蔡濟恭)이 사도(邪徒: 사악한 무리)가 아님을 강력히 변호하였다.
저서로는 『청계헌문집(聽溪軒文集)』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계헌문집(聽溪軒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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