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문담(文詹), 호는 청계(聽溪). 신경하(辛景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광복(辛光復)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신치보(辛致輔)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신응악(申應岳)의 딸이다. 손석모(孫錫謨)의 문인이다.
1798년(정조 2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04년(순조 4) 승문원정자가 되고, 1806년 조경묘령(肇慶廟令), 이어 예조정랑이 되었으며, 1809년 사간원정언, 1819년 사헌부지평을 거쳐 이조좌랑과 양산군수를 지냈다.
뒤에 통례원우통례(通禮院右通禮) 등이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92년에 유생으로 사도세자(思悼世子)에 관한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를 올린 일이 있는데, 1800년 소의 우두머리인 이우(李瑀)가 유배되자,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다가 뒤에 재등용되었다.
또, 곽재우(郭再祐)의 창의변무(倡義辨誣: 의병을 일으킨 일에 대한 변증)와 채제공(蔡濟恭)이 사도(邪徒: 사악한 무리)가 아님을 강력히 변호하였다.
저서로는 『청계헌문집(聽溪軒文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