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시직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상소를 통하여 전개된 이 논쟁의 초점은 유직이 이황을 절대시하면서 이이·성혼이 이황의 학설에 비판적이었음을 비난한 데 대하여, 신석형은 이황이 조선의 주돈이(周敦頤)·정이(程頤)라면 이이·성혼은 주희(朱熹)·장재(張載)에 해당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이·성혼의 학문적 위치를 중시한 것이었다.
효종은 양쪽의 주장이 학문적 논쟁을 지나쳐 사적인 감정대립으로 발전하였다 하여 논쟁 자체를 무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경상도 유생들이 신석형을 지지하면서 전원 과거에 응시하지 않는 시위를 벌이자, 효종은 경상도 수령들을 통하여 유생들을 효유, 진정시켜 사건을 일단락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신석형의 문장행의(文章行誼)가 사림의 모범이 되고, 상주의 운계서원(雲溪書院)에 배향되기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백원집(百源集)』
- 『상주읍지(尙州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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