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망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승정원주서, 사헌부장령, 파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희상(希尙)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괄의 난
  • 본관영산(靈山: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
  • 사망 연도1654년(효종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정원주서|사헌부장령|파주목사
  • 출생 연도1595년(선조 28)
  • 출생지호남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수건 (영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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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승정원주서, 사헌부장령, 파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희상(希尙). 호남 출신. 아버지는 신장길(辛長吉)이며, 어머니는 이안당(李安鐺)의 딸이다. 강항(姜沆)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7년 (광해군 9) 사마시를 거쳐 1624년(인조 2)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등용되었다가 1627년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로 있을 때, 지난 이괄(李适)의 난을 당하여 국왕을 호종하지 않았다는 죄목이 추론되어 잠시 체직된 바 있다. 전적으로 있을 때 모친의 봉양을 위하여 외직을 자청하여 모친이 있는 곳과 가까운 흥양·함평 등의 현감을 지냈다.

장흥현감으로 있을 때는 노비가 상전을 죽인 강상변(綱常變: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한 변고)으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황해도도사로 있을 때는 청나라 사신 정명수(鄭命壽)의 노여움을 사서 구금되었다가 석방된 적도 있었다.

1646년과 이듬해에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어 언관과 감찰관으로 활약하였다. 공조와 예조의 정랑, 경상도도사·황해도도사·충청도도사 등을 거쳐 파주목사를 지내다가 병으로 사퇴하였다. 문한(文翰: 문필)과 대간직 및 외관을 역임하면서 문학과 행정실무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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