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을나(高乙那)의 후손 고후(高厚)가 그의 아우 두 명과 함께 바다를 건너 신라에 와서 조회를 드리자 왕이 기뻐하며 성주(星主)라는 칭호와 탐라(耽羅)라는 나라이름을 주었다고 하는데, 신촌은 이 때 촌(村)을 두게 되었다.
고려 의종 때에 현이 되었으나, 원종이 삼별초(三別抄)를 평정시킨 뒤 합쳐서 주(州)로 하였다가, 충렬왕 때 다시 나누어 촌을 만듦으로써 폐현이 되었다.
이 마을은 약 400년 전 촌이 생길 당시에는 지금보다 산 쪽으로 위치하였으나 음료수를 찾아 해변으로 내려와 새로 촌을 형성하였다는 데서 ‘신촌’이라는 마을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의 조천읍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