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주 출생. 신숙주(申叔舟)의 17세손이며 독립투사인 신규식(申圭植)이 그의 친숙(親叔)이다. 1914년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뒤 모교 산부인과 조수로 입실 후 조교수로 승진, 1925년까지 봉직하였다. 교수직 사임하고 황해도 연안에 연안의원을, 이후 서울 인사동에 산부인과의원을 개설하였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제1회졸업생인 박서양(朴瑞陽)의 누이 박양무와 결혼하였다.
조교수 봉직중 교실의 연구 분위기 조성에 공이 컸고 11편의 연구논문을 남겼으며, 그 가운데 「임신, 산욕각기 및 유아각기의 기초적 연구」로 규슈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의원을 개설할 당시는 서울시내에 개인 산부인과의원이 고작 4개소(3개소는 일본인 경영)밖에 안 되었고, 따라서 한국인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1938년 한성의사회장(漢城醫師會長)을 역임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