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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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자격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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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사용한 자동 시보장치가 된 물시계.
내용 요약

자격루는 조선시대에 사용한 자동 시보장치가 된 물시계이다. 1434년(세종 16) 왕명을 받아 장영실·이천·김조 등이 처음으로 만들었다. 시·경·점에 따라 자동으로 종·북·징을 쳐서 시보를 알리도록 되어 있다. 세종 때 만든 자격루는 소실되고 없지만 『증보문헌비고』와 『국조역상고』에 보루각의 자격루와 흠경각의 자격루 구조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는 1536년(중종 31)에 만든 파수호와 수수호가 덕수궁 뜰에 보관되어 있다. 이 누각은 효종 때 이후 조선 말까지 누국에서 표준 시계로 썼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에 사용한 자동 시보장치가 된 물시계.
내용

1434년(세종 16) 왕명을 받아 장영실(蔣英實) · 이천(李蕆) · 김조(金銚) 등이 처음으로 물시계를 만들었는데 시(時) · 경(更) · 점(點)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종 · 북 · 징을 쳐서 시보를 알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 구조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에 실려 있으며, 보루각(報漏閣)의 자격루와 흠경각(欽敬閣)의 자격루가 기록되어 있다.

① 보루각의 자격루: 1434년 7월 1일(양력으로 8월 5일) 경회루의 남쪽에 보루각을 세우고 그 안에 자격루를 설치하여 시각을 알리도록 하였다. 4개의 파수호(播水壺), 2개의 수수호(受水壺), 12개의 살대[箭], 동력전달장치 및 시보장치로 되어 있다. 파수호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수수호로 들어가서 살대를 띄워올리는 것은 주1와 다를 바가 없다.

살대가 떠오름에 따라 이 부력(浮力)이 지렛대와 쇠구슬에 전달되어 구슬이 떨어지면서 시각을 알리는 장치를 움직이게 한다. 즉, 파수호보다 높은 곳에는 목인(木人)이 3명 서 있어서 하나는 시를 알리기 위하여 종을 치는 일을 맡고, 다른 하나는 경을 알리기 위하여 북을 치는 일을 맡고, 나머지 하나는 점을 알리기 위하여 징을 치는 일을 맡았다.

한편 목인보다 낮은 곳에 평륜(平輪)이 있어서 그 둘레에 12신을 배치해놓았다. 이들 신(神)은 각각 한시씩 열두시를 담당하였다. 만일 자시(子時)가 되면 자시를 맡은 신이 자시의 시패(時牌)를 들고 솟아올라 왔다가 내려간다. 이와 같이 이 자격루는 종 · 북 · 징의 소리와 12신의 동작을 통해 각각 시각을 알 수 있다.

② 흠경각의 자격루: 경복궁 천추전(千秋殿)의 서쪽에 조그마한 집을 지어놓고, 그 속에 풀을 먹인 종이로 높이 7척의 산을 만들어 산 속에는 옥루(玉漏)와 기계바퀴를 설치하여 수력으로 이것을 돌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금으로 크기가 탄환만하게 태양을 만들어서 밤에는 산 속에, 낮에는 산 밖에 나타나게 하여 하루에 한 바퀴씩 돌게 하였는데, 태양의 고도와 출몰시각이 계절과 일치하였다.

태양이 지나는 길의 아래에는 4명의 옥녀(玉女)가 시각을 맡아보았고, 그 밑에는 4신이 있는데 각각 자기의 방위에 서서 시각에 맞추어 매시 제자리를 한 방위씩 돈다.

산의 남쪽 기슭에는 높은 대(臺)가 있고, 그 위에 시간을 맡은 한 사람이 붉은 옷을 갖추어 입고 산을 등지고 서 있으며, 또 세 사람의 무사(武士)가 모두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서서 각각 종 · 북 · 징을 치는 일을 담당한다.

한편 12신이 산의 둘레에 각각 제자리에 엎드려 있는데, 12신 뒤에는 각각 구멍이 뚫려 있으나 닫혀 있다. 자시가 되면 서신(鼠神: 쥐신) 뒤의 구멍이 저절로 열리고 옥녀가 시패를 들고 나오며 서신은 그 앞에서 일어난다. 다음에 옥녀는 들어가고 구멍도 저절로 닫히고 서신은 엎드린다.

축시가 되면 우신(牛神)이 같은 짓을 하고 동시에 옥녀도 시패를 들고 나왔다 들어간다. 이와 같이 하여 인시 · 묘시…… 해시를 지나면 다시 자시부터 반복한다.

세종 때 만든 자격루는 모두 소실되고 없다.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는 1536년(중종 31)에 만든 파수호와 수수호가 덕수궁의 뜰에 보관되어 있다. 청동으로 된 1개의 큰 파수호(최대지름 94㎝, 높이 71㎝)와 2개의 작은 파수호(최대지름 46.5㎝, 높이 40.5㎝)는 모두 단지 모양을 하고 있다. 2개의 청동제 수수호(외경 37㎝, 내경 33㎝, 높이 196㎝)는 원통형을 하고 있다.

큰 파수호와 작은 파수호 사이나, 작은 파수호와 수수호 사이는 가는 관(管)을 통하여 물을 흘려보낸다. 그 관은 세월이 오래되어 파손되고 겨우 파수호와 수수호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누각은 효종 때 이후 조선 말까지 주2에서 표준시계로 썼다.

참고문헌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한국과학기술사』(전상운, 정음사, 1979)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밤 동안의 시간을 알리는 데 쓰던 물시계.    우리말샘

주2

조선 시대에, 자격루를 표준 시계로 하여 설치하였던 전각. 세종 16년(1434)에 경복궁에 설치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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