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서는 첨성대를 만들어 측후에 대비하기도 했으며, 고려시대에는 건국 초에 천문관서로서 태복감(太卜監)·태화국(太火局)을 두었다가 뒤에 사천대(司天臺)·사천감(司天監)·관후서(觀候署)·서운관(書雲觀) 등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조선시대에는 1466년(세조 12)에 이를 관상감이라 개칭해 예조에 속하게 하였다. 연산군 때에는 사력서(司曆署)로 개칭했다가 중종 때에 다시 관상감으로 환원하였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관원은 다음과 같다. 영사(領事)는 영의정이 겸임하고, 제조(提調) 2인, 정(正, 정3품) 1인, 부정(副正, 종3품) 1인, 첨정(僉正, 종4품) 1인, 판관(判官, 종5품) 2인, 주부(主簿, 종6품) 2인, 천문학·지리학 교수(종6품) 각 1인, 직장(直長, 종7품) 2인, 봉사(奉事, 종8품) 2인, 부봉사(副奉事, 정9품) 3인, 천문학·지리학 훈도(訓導, 정9품) 각 1인, 명과학(命課學) 훈도(정9품) 2인, 참봉(종9품) 3인을 두었다. 이 밖에 산원(散員)이라 하여 천문학·지리학·명과학 분야로 나누고 임시직 인원을 다수 채용하였다.
세종 때 경회루 북쪽에 천문 관측 기구인 간의대(簡儀臺)를 만들었고, 선조 때 흠경각(欽敬閣)을 지었다. 또 영조 때 다시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석각(石刻)의 천문도(天文圖)를 설치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관상감은 폐지되고 관상국(觀象局)이 설치되었는데, 기구가 축소되어 소장·기사·기수·서기 등 약간 명만 두어졌다. 관상감은 지금의 기상청과 천문대에 해당한다.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현대빌딩 앞마당에 그 유적인 일영대(日影臺)가 남아 있다. →관상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