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출신지는 진주(晋州). 자는 계함(季涵), 자호는 석천(石泉), 주역선생((周易先生)이다.
천문관측기기의 제작기술이 뛰어나고 역산(曆算)에 밝았다.
1789년(정조 13)에 그 당시 사용하고 있던 각 절기의 중성(中星) 위치가 1744년(영조 20)에 측정된 값으로서 0.5° 정도 어긋나 있었다. 이를 보정하기 위하여 역관 이덕성(李德星)과 함께 적도경위의(赤道經緯儀)와 지평일구(地平日晷)를 제작하였다.
『신법중성기(新法中星紀)』와 『신법누주통의(新法漏籌通義)』 등을 편찬하였으며, 성주덕(成周悳)과 함께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4권을 엮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