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신 금관조복 ( )

목차
관련 정보
심동신 금관조복
심동신 금관조복
의생활
유물
문화재
조선 말기 문신 심동신(沈東臣: 1824∼?)이 입었던 당상관용 조복(朝服) 의(衣) · 상(裳)과 부속품 등 8점.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심동신 금관조복(沈東臣 金冠朝服)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가민속문화재(1964년 12월 07일 지정)
소재지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 152, 단국대석주선기념박물관 (죽전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말기 문신 심동신(沈東臣: 1824∼?)이 입었던 당상관용 조복(朝服) 의(衣) · 상(裳)과 부속품 등 8점.
개설

조복은 금칠한 양관(梁冠)으로 인해 ‘금관조복(金冠朝服)’이라 부르는 관복의 하나로서 붉은색 의(衣)와 상(裳)이 기본이며 양관(梁冠)·중단(中單)·폐슬(蔽膝)·수(綬)·패(佩)·대(帶)·화(靴)·말(襪)·홀(笏)과 함께 일습을 갖춘다. 심동신 금관조복은 화·말을 제외한 8점으로 양관 1점, 의 1점, 중단 1점, 상 1점, 수 1점, 패옥(佩玉) 1쌍, 서대(犀帶) 1점, 홀 1개이다. 심동신은 헌종(憲宗) 말∼철종(哲宗) 원년(1850) 증광시(增廣試)에 나가 을과(乙科)에 급제한 인물이다. 이 유물은 그가 참판으로 있었을 때 착용하였던 당상관용 조복이다. 말과 화가 제외된 상태에서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어 오다가 1950년대 고(故) 석주선 박사에게 양도되었다. 1964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내용

양관(梁冠)은 조선시대 관리의 제복(祭服)이나 조복을 입을 때 착용하는 관모로 품등에 따라 양(梁)의 수를 달리 하여 양관이라 하며 금칠이 되어 있어 금관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정조 이후 흑칠을 한 제복관과 구별되어 조복관으로 착용되었다. 심동신의 양관은 종선이 5개인 오량관(五梁冠)으로 높이는 19.7㎝이다. 관무와 배면은 투조하여 문양을 새긴 후 금색을 칠하고 나머지 부분은 검게 칠하였다. 뒤에는 관을 가로질러 목잠(木簪)이 꽂혀 있고 목잠에는 옥색의 술 끈을 잠에 한 번 감아 양옆으로 늘어뜨려 장식하였다.

의(衣)는 적초의(赤綃衣)라고도 하며 조복 중 가장 상의로 중단 위에 입는 붉은 색의 포이다. 사용된 옷감에 따라 전기에는 적라의(赤羅衣)의 기록도 있으며『경국대전』에는 적초의(赤綃衣)로 바뀌었다. 후대에는 초(綃)뿐만 아니라 명주·은조사·민항라[無紋亢羅]·사(紗) 등 다양한 옷감이 사용되었다. 심동신 조복의 의는 홍색 9족 항라로 만들었는데 깃은 목판 당코깃이며 깃·도련·옆선·수구 등에 흑색선이 7.5cm 너비로 둘러져 있고 사이에 흰색이 가늘게 둘러져 있다. 길이 92㎝, 화장 99㎝, 품 49㎝, 진동 56㎝이다. 소매는 넓고 옆은 트여 있다. 구한말에는 의제의 간편화로 조복 가슴 부위에 폐슬이 부착되어 상징적 장식으로만 사용되었는데 심동신의 조복 의에도 가슴 부위에 폐슬이 부착되어 있다. 폐슬은 제복이나 조복의 의례용 예복에 쓰이는 붉은 색의 사각 형태로 예를 섬기고 집행하는 공경의 표시로 사용되는 상징적 장식이다. 색과 직물소재는 대부분 의와 같으며 모양은 직사각형·사다리꼴·도끼모양 등이다.

중단(中單)은 적초의 속에 받쳐 입던 옷으로 초기에는 백초중단(白綃中單)을 입었으나 17세기 이후 창의를 중단으로 입게 되었고 조선 말기 고종대에 이르러 청초중단(靑綃中單)으로 변화되었는데, 이때의 중단은 남색에 흑선을 두른 학창의가 입혀졌다. 심동신의 중단은 청색 명주로 만들었다. 길이 124㎝, 화장 98㎝, 품 50㎝, 진동 50㎝이며 수구, 섶선단, 옆트임 도련단에 6.5㎝ 너비의 흑색선을 둘렀는데 5족 항라로 만들었다.

상(裳)은 조복과 제복을 입을 때 중단 위에 착용하는 의례용 치마로, 앞이 3폭, 뒤가 4폭으로 나뉘어 주름을 잡았으며 허리에 달아 착용한다. 유물은 조복과 같은 옷감인 홍색 9족 항라로 만들었는데 치마의 길이는 86㎝, 앞은 너비 38㎝, 뒤는 너비 41㎝이다. 위에서 아래까지 주름을 잡은 후 7.5㎝ 너비의 5족 항라로 흑색선을 둘렀으며 사이에 흰색의 실선을 둘렀다. 위쪽에는 흰색 명주로 허리말기를 달아 오른쪽으로 여며 입도록 되어 있다.

수(綬)는 조복·제복 등에 부가되는 장식물로서 품계를 나타내는 표식 중의 하나이며, 뒤에 늘어뜨린다고 하여 후수라고도 칭하였다.『경국대전』이나『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등에는 1·2품용 후수는 황·록·적·자(黃綠赤紫)의 4색사(色絲)를 사용한 운학(雲鶴)에 금환(金環) 2개를 달고 끝에는 청사망(靑絲網)을 단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3품은 반조화금(盤雕花錦)에 은환(銀環)이며 4품은 연작화금(練鵲花錦)에 은환이다. 수는 조선 전기의 수의 제도를 따랐으며 제도는 변함이 없으나 구한말의 유물은 제도와는 달리 모두가 운학(雲鶴)이며, 2쌍에서 5쌍으로 차이를 보인다. 지정된 후수는 대대와 함께 부착되어 있다. 후수는 길이 66㎝, 폭 25㎝로 홍색의 융(絨)을 바탕직물로 하여 청·황·백색 3쌍의 운학을 수놓았다. 상부 양쪽에는 금환 두 개 중 하나가 분실되어 1개만 남아 있다. 운학 바탕 아래에는 청사망(靑絲網)이 드리워져 있고 좌우 양옆에 홍색의 소수(小綬)가 달렸다. 심동신의 수는 가장자리에 흑선을 두른 대대와 함께 부착되어 있으며 대대 양끝에는 끈이 달려 여미게 되어 있다. 대대는 백색의 명주로 만들었다. 제도상으로 대대는 수와 따로 제작되지만 구한말 유물에는 착용이 간편하도록 대대에 후수를 고정시켜서 사용하였다.

패옥(佩玉) 1쌍은 심청옥(深靑玉)와 백옥(白玉)을 섞어서 사용했으며 운보문사(雲寶紋紗)로 만든 주머니 안에 들어 있다.

이외에 서대 1점, 상아홀 1점이 있다.

의의와 평가

심동신 금관조복 일습은 1890년대를 전후한 구한말의 유품 중 착용자가 확실하고 조복의와 상, 양관뿐만 아니라 부속품까지 견실하게 갖추어져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큰 유물이라고 평가된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 2 복식·자수편』(문화재청 편, 2006)
『명선(名選) 중(中)』(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편, 2004)
「조선시대 문무백관 조복에 관한 연구」(장정윤,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관모(冠帽)와 수식(首飾)』(석주선,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199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