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시강원에서 소현세자 일행이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의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을 때의 상황을 정리한 실록. 관청일기.
서지적 사항
그 밖에도 몇 개의 초록본이 전해진다. 규장각도서에 있는 ≪봉황성일기 鳳凰城日記≫ 1책은 1642년(인조 20) 10월과 11월의 일기이며, ≪북행일기 北行日記≫ 1책은 1644년 4∼6월의 일기인데 이것들은 원래 10책본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
청은 심양관을 조선 정부를 대리하는 현지 기관으로 취급하고 조선에 대한 연락과 통보를 비롯해 거의 모든 교섭을 그곳을 상대로 하였다. 이에 대해 심양관에서는 일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승정원에 장계를 보내어 본국 정부의 지휘를 받고, 때로는 평안감사나 의주부윤에게 세자가 임시 조처를 명하기도 하였다.
세자 일행은 그 뒤 1644년 청의 천도에 따라 9월 연경(燕京)으로 옮겼으나, 중원을 제패해 조선과 명에 자신을 가지게 된 청은 바로 그들을 풀어 주어 그 해 11월에 귀국하였다.
그 동안 소현세자는 인평대군(麟平大君) 등을 대리 볼모로 하여 1640년과 1643년에 조선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2회에 걸쳐 명군과의 전투에 종군했고 수 차례 사냥 여행을 하였다.
이 책은 다른 일기와 마찬가지로 날짜순으로 날씨, 서연을 비롯한 일상의 동정, 본국과의 연락, 수행한 신하들의 사정 등 소현세자 일행이 청에 거주하면서 겪은 갖가지 일을 기록하였다.
부분적으로는 청으로 세자를 수행한 관인들의 명단, 청에서 사냥 등의 여행에 세자를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 김신국(金藎國) 등 고위 관직자의 상소 등이 그 문건의 제목과 함께 실려 있기도 하다.
또한, 세자가 심양관을 떠나 있을 시기에 대해서는 세자의 동정을 기록한 일기와 심양관의 사정을 기록한 일기 두 가지가 작성되어 나란히 실려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엽행일기 獵行日記>·<엽행시관중일기 獵行時館中日記>와 같이 그 제목도 따로 붙였다.
주요 내용을 들어본다면, 1637년 윤집(尹集) 등 삼학사의 처형, 1638년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세자와 봉림대군이 청의 명 정벌을 수행한 것, 1639년 청의 군사력을 동원하라는 요구와 조선의 그에 대한 대응 등을 기록하였다.
이 밖에 1640년 임경업(林慶業)의 군대가 징발되어 청에 도착한 것과 그 이후 임경업의 탈출과 청에의 압송, 이해 이후 김상헌(金尙憲)·최명길(崔鳴吉) 등의 압송과 석방, 1643년 청태종의 죽음, 1644년 청의 북경 천도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서지적 정보
참고문헌
- 「심양일기해설(瀋陽日記解說)」(이석호, 『한국명저대전집』, 대양서적,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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