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말년에 의관(議官)을 지낸 노병훈(盧秉勳)이 그의 종제 노병준(盧秉準)과 1909년 4월에 사립순성학교로 설립하였다. 노병훈은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이 국권회복을 위한 선결과제임을 깨달아 학교의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1910년 4월에 순창공립보통학교의 분교로 편입되었다가 1913년 5월에 쌍치공립보통학교로 독립하였다. 초기에는 4년제 보통학교로 시작하여 1939년에 6년제 쌍치공립국민학교로 개편되었으며, 광복 이후에 교명을 쌍치국민학교로 변경하였다.
이 지역은 전북도와 전남도가 인접한 노령산맥 중의 고원분지로 해발 300∼500m의 산간벽지이며, 6·25사변 후에는 빨치산들의 거점이 되어 만 2년 후인 1952년에 수복은 되었으나 면내 전체가 완전 소실되어 잿더미만 남았었다.
1953년 지방유지와 학부형의 협조로 3교실분의 가건물이 설립되고 1955년 군사원조로 12개 교실을 신축하여 학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학생수가 700여명으로 15학급을 편성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농촌의 급격한 인구감소로 학생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1996년 3월에 쌍치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8년 3월 전북도교육청 학교재량시간 운영 시범학교로 지정되었으며, 1999년 2월 금국초등학교 통합하였다.
2002년 3월 전북도교육청 자율특색 연구시범학교로 지정되었고, 2009년 3월 기초학력신장 연구학교 지정되었다.
2010년 현재 8학급에 재학생 61명, 교원 17명이다. 병설유치원 1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졸업생은 6·25사변으로 서류가 소실되어 이전 것은 알 수 없고, 1950년대 중반 이후 2010년 2월 현재 88회 졸업으로 3,84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