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판 『독립신문(獨立新聞)』 1920년 2월 20일(제48호)부터 같은 해 4월 12일(제62호)까지 12회에 걸쳐 국한문혼용체로 연재되었다.
작자는 ‘뒤바보’ 필명의 계봉우(桂奉瑀)로 알려지고 있다. 서술체재는 서언에 이어 ① 이식된 원인, ② 풍속, ③ 노동, ④ 사환(仕宦), ⑤ 사회, ⑥ 종교, ⑦ 교육, ⑧ 독립운동 등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되었고, 그 밑에 소목차가 달려 있다.
기술내용은 우선 한인 이주와 그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원인을 구명하고, 신지허(新地墟)·추풍(秋風)·소왕령(蘇王嶺)·사만·해삼위(海蔘威) 등 연해주 일대의 이주 개척의 사실(史實)을 소상히 밝히고 이주민의 의식주의 풍습과 예절·혼례·언어관습 등을 논하였다.
또한, 연해주 이주 한인들의 경제적 토대가 되는 직업에 대해서는 농업·상업·프드랴치크(노동자 혹은 납품 중개인), 프리카즈시크(점원) 등 14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직업은 러시아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이국적인 것이 상당수 들어 있어 주의를 끈다.
다음으로 사환열(仕宦熱)이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사회에까지 만연해 있음을 지적, 우리 민족의 고질적인 폐단으로 기술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민회(國民會)·성명회(聲明會)·권업회(勸業會)·한족회(韓族會) 등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결성된 여러 자치단체와 독립운동단체에 대해서도 비교적 사실적으로 기술을 하였다.
그리스정교와 기독교 등 종교의 실태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또한, 한인 자제들의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러시아 학제상의 교육과 권업회 등 한인단체에서의 교육을 차례로 언급한 뒤, 필자는 러시아의 신사조(新思潮)를 충분히 수용하는 것이 ‘절원(切願)’이라 하였다.
끝으로 3·1운동 이후의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을 논하면서 독립군의 편성·활동 사실을 기술한 다음, “아령(俄領)의 과거보다 더욱 장래의 특저(特著)한 실기(實記)를 흥미있게 초(草)하기 위해 붓을 놓는다.”고 하였다.
아령실기는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지방의 한인 역사를 각 분야에서 논급한 것이다. 그 기술이 비교적 정확하고 다른 사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실을 적지 않게 담고 있다.
더욱이, 이 글의 필자는 연해주·남북만주 일대를 우리 민족의 옛 영토로 인식[虞曰肅愼 夏曰州愼 金曰珠里申 淸曰珠愼]하였다. 조국이 멸망된 현실에서 이곳을 민족부흥기지로 삼고자 하는 동기와 염원에서 이 글을 집필한 만큼 강렬한 민족의식이 깔려 있다. 이 글은 연해주 지역에서 전개된 한국독립운동의 실상을 기록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