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4대 임금인 탈해왕의 전설과 관련되는 지명이다.
탈해의 부왕인 다파나국(多婆那國, 또는 龍城國)의 함달파(含達婆)가 적녀국(積女國) 출신의 왕녀와 혼인하였는데, 왕비가 임신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이 이를 상서롭지 못하게 여겨 내다버리게 하자 왕비가 알을 비단에 싸서 궤 속에 넣어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웠다.
이 배가 진한(辰韓)의 동쪽 하서지촌(下西知村)의 아진포(阿珍浦)에 이르렀을 때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는 한 노파가 배에 있던 길이가 20자 넓이가 13자나 되는 궤가 있어 이를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있어 거두어 길렀는데 그가 바로 석탈해이다.
탈해라는 이름은 배가 바다에 머물러 있을 때, 까치가 짖어댔으므로 까치 작(鵲)자에서 새조(鳥)자를 떼어버려 석(昔)자로 성을 삼고, 궤를 풀고 나왔으니 벗고 풀었다는 뜻으로 이름을 탈해(脫解)라 하였다 한다.
아진포라는 지명은 아진이 큰 읍 또는 큰 들을 뜻하므로 영일만 지역에 있었던 큰 마을로 추측된다.
아진포는 고려시대 이후에는 존속되지 않았으므로 전설적인 지명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1985년 이래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에 의해 나아천 하구의 홈바위 언덕에 조선헌종 때 세운 석탈해왕탄강유허비각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나아천 하구 바로 북쪽에 위치한 마을 이름도 아이를 키웠다 하여 장아리(長兒里)로 불린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