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3책. 사본. 편찬연대는 1712년(숙종 38)에서 1725년(영조 1)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이 책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74년권영철(權寧徹)에 의해서이며, 그 뒤 영인되어 출간된 바 있다.
권1에는 성기원류(聲氣源流)·자음원류(字音源流)·아음원류(雅音源流)·악부원류(樂府源流), 권2에는 속악원류(俗樂源流)·무의원류(舞儀源流)·무기(舞器)·무용(舞容)·잡희(雜戱)·악기(樂器 : 금석사죽포토혁목팔음(金石絲竹匏土革木八音) 外) 등이 실려 있고, 권3에는 아악장(雅樂章)과 속악장(俗樂章) 상(上)이, 권4에는 속악장 하(下)와 가사(歌詞) 등이 실려 있다. 그러나 서문과 권2는 절취당하여 없어졌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국문표기의 시가는 고려·조선 등으로 왕조를 일목요연하게 구분하여 각 시대의 속악을 게재하여 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제까지 국문학계에서 고려가요·이조시가로 막연히 추측하여 취급하던 시가가 다소 잘못되어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하여 비로소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예로 「유림가(儒林歌)」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반면에 「만전춘(滿殿春)」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되어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앞으로 『악학궤범』등과 비교한 연구성과가 나오게 되면 국악학 및 국문학계에 큰 공헌을 할 것으로 여겨지며,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점으로만 보아도 이 책의 중요성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① 『악학편고』 속악장의 대본이 되었던 악원에서 간행된 악서가 있고, ② 「만전춘」의 작자는 누구이며, 또 「만전춘」은 별사(別詞)인가 원사(原詞)인가 하는 점, ③ 「여민락」과 「용비어천가」의 제작상의 상호관련성 및 찬자와 작자가 정도전(鄭道傳)과 정인지(鄭麟趾) 등 각각 다른 인물일 것이라는 점, ④ 「관동별곡」과 음악과의 관련성 및 이본(異本)에 대한 문제, ⑤ 정몽주(鄭夢周)와 길재(吉再)의 시조가 새로이 2수 발견된 점, ⑥ 「이상곡(履霜曲)」이 고려의 시중(侍中)이었던 채홍철(蔡洪哲)의 작품이라는 사실, ⑦ 저자인 이형상의 실학사상 등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