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백제의 아로곡(阿老谷)이었는데, 당이 백제를 멸한 후 노신(鹵辛)으로 고쳐 동명주(東明州)의 영현으로 삼았다. 신라 경덕왕 때 야로(野老)로 고쳐 반남군(潘南郡: 지금의 羅州市 潘南面)의 속현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안로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 나주에 귀속시켰다. 1895년 영암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나주군 세화면 임천리 등 일부가 병합, 안로리가 되어 금정면에 편입되었다.
안로라는 지명은 ‘큰 고을〔大邑〕’이라는 뜻을 가진다. 안로의 위치는 섬진강 유역의 나주시 남쪽을 차지하며, 이 지역은 나주평야의 일부를 구성한다. 옛 주읍(主邑)이었던 나주시 반남면과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섬진강의 지류인 송지천(松只川: 지금의 萬淵川) 유역에 자리잡은 고을로서 나주와 강진을 잇는 도로가 발달하였고, 안로를 중심으로 무안과 보성을 잇는 동서간의 도로도 발달하였다. 이곳에 동창(東倉)이 있어 일대의 세곡(稅穀)을 모아 운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