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652년(효종 3)에 신겸(信謙), 덕희(德熙), 지언(智彦), 진성(眞性), 신율(信律), 삼인(三印), 경원(敬元), 명계(明戒), 혜월(惠月)의 9명의 승려가 그렸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려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의 석가불좌상이 영축산(靈竺山)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영산회괘불탱이다.
키 모양의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지닌 석가불좌상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 사천왕, 14명의 제자들, 용왕과 용녀, 팔부신중, 타방불(他方佛) 등이 에워싼 군도식(群圖式) 구도이다.
보개(寶蓋)를 갖춘 낮은 사각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한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 편단(右肩偏袒)의 법의(法衣: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다. 그리고 반원형의 옷자락이 대좌 앞으로 늘어져있다. 둥근 얼굴은 근엄하며, 넓은 어깨와 팔, 손 등에 부피감이 느껴진다. 안정된 신체의 석가불을 장식한 광배는 연당초 문양으로 화려하다.
대좌 앞에 측면향(側面向)으로 마주 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각기 연봉오리와 여의(如意)를 들고 있다. 갑옷을 입은 사천왕은 다양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동방천왕은 복부에 짐승의 머리, 남방천왕은 가슴에 짐승 가죽을 매달았다. 보관을 쓴 보살 모습의 범천과 제석천은 합장한 자세로, 둥근 목깃의 천의(天衣: 천인(天人)이나 선녀의 옷)를 입었다.
정수리가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처럼 솟은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는 석가불 가까이 배치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12제자는 상단에 묘사되어 있다. 이 위로 용왕과 용녀, 팔부신중, 타방불이 나타나 있다.
불, 보살의 신체에 금채(金彩)를 대신하는 황색을 사용하였다. 붉은색과 녹색 위주로 황색·감색·흰색이 사용되었다. 특히 제자의 안면에 강조된 요철(凹凸)을 나타내기 위한 채색 수법은 특징적이다. 왕·왕비·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괘불탱의 시주 물품 목록 중 황금, 주홍, 수도황(水陶黃), 금, 황란(黃丹), 석자황(石紫黃) 등 안료 명칭 및 괘불, 포(布), 말장(醬), 식염(소금), 등촉 등 괘불 제작 비용 분담 내용이 자세하다.
수화사인 신겸과 덕희, 경윤은 1649년에 충청북도 청주시 보살사(菩薩寺)의 영산회괘불탱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17세기 중엽은 군도형식의 영산회상도가 조성되던 시기로 이 두 괘불탱을 비교하면 안심사 괘불탱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보살 일부만 표현하는 등 권속이 생략되어 구성이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