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안중근은 상해, 북간도, 노령 등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하던차에 1909년 노브키예프스크에서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단지회(斷指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죽음으로써 나라를 구할 것을 맹세하고, 침략의 원흉인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마침내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오를 사살하고 체포되었고, 그 뒤 사형선고를 받아 순국할 때까지 만주의 여순(旅順) 감옥에 수감되었다. 당시 그가 옥중에서 쓴 26점의 유묵이 197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동국대학교박물관, 동아대학교박물관, 숭실대학교박물관, 홍익대학교박물관, 안중근의사숭모회, 청와대 등의 여러 기관과 기타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이들 유묵은 1910년 2월과 3월에 쓴 것들로 대부분 “庚戌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경술이(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 낙관하고, 인장 대신에 먹을 손바닥에 먹을 묻혀 장인(掌印)으로 찍었다. 그 해 2월 14일의 공판에서 사형이 언도되었고 3월 26일에 형이 집행되었던 것을 상기하면, 당시 안중근의 비장했던 심정을 상상할 만하다. 게다가 단지회를 결성할 때 혈서를 쓰기 위해 잘랐던 왼손 넷째 손가락의 모양이 장인으로 선명하게 나타나 있어 그의 기개를 더욱 느끼게 한다.
글씨의 내용은 경전 구절이나 격언, 그리고 자신의 심회를 적은 시 등으로 국가를 향한 그의 충정과 민족을 위한 사람,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나이다운 기개가 잘 나타나 있다. 그 가운데 일본으로부터 전래되어 1972년 보물로 지정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는 유묵은 공부하는 사람들을 독려하는 좋은 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장렬한 최후를 앞둔 독립투사의 충혼이 깃들여 있는 유품일 뿐만 아니라 글씨로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획마다 힘을 주어 흐트러진 곳이 없이 단정하면서도 힘찬 필치를 보여 그의 강인한 의지와 초연한 자세를 보는 듯하다.
안중근의사유묵에는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 개인소장) ,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동국대학교박물관), 년년세세화상사세세년년인부동(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 삼성미술관 리움),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 청와대), 동양대세사묘현유지남아기안면화국미성유강개정략불개진가련(東洋大勢思杳玄有志男兒豈安眠和局未成猶慷慨政略不改眞可憐, 숭실대학교박물관),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동아대학교박물관), 용공난용연포기재(庸工難用連抱奇材, 국립중앙박물관), 인무원려난성대업(人無遠慮難成大業, 숭실대학교박물관), 오노봉위필청천일장지삼상작연지사아복중시(五老峰爲筆靑天一丈紙三湘作硯池寫我腹中詩, 홍익대학교박물관),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군천리이표촌성망안욕천행물부정(思君千里以表寸誠望眼欲穿幸勿負情, 개인소장), 장부수사심여철의사임위기사운(丈夫雖死心如鐵義士臨危氣似雲, 숭실대학교박물관), 박학어문약지이례(博學於文約之以禮,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일강산(第一江山, 숭실대학교박물관), 청초당(靑草塘, 해군사관학교),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 개인소장), 인지당(仁智堂, 삼성미술관 리움) 인내(忍耐, 개인소장), 극락(極樂,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운재(雲齋,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욕보동양선개정계시과실기추회하급(欲保東洋先改政界時過失機追悔何及, 단국대학교석수선기념박물관),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임적선진위장의무(臨敵先進 爲將義務, 해군사관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