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오음회(吾音會)라고도 한다. 고려 말 오도리(斡朶里, 또는 吾都里)의 추장 동맹가태무르(童猛哥帖木兒)가 삼성(三姓) 지방에서 이곳에 옮겨와 우리나라와 수교하고 명나라에 복속하여 명나라 지방관이 되었다.
1433년(세종 15) 삼성의 야인(野人)이 습격하여 추장 부자를 죽이자 그들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세종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다음 해에 석막(石幕)에 있던 영북진(寧北鎭)을 백안수소(伯顔愁所)에 옮겨 성을 쌓았다.
백안수소가 알목하와 거리가 있으므로 뒤에 알목하에 따로 진을 설치하여, 풍산(豊山)·원산(圓山)·세곡(細谷)·유동(宥洞) 등의 6개 지역을 관할하게 하여 회령진(會寧鎭)이라 하였다가 뒤에 도호부가 되었다. 또한, 회령 부근을 흐르는 회령천(會寧川)의 조선시대 이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