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면. 작자가 자가판(自家版)으로 낸 첫 시집이다. 서문이나 발문 없이 총 30편의 작품을 4부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제1부 ‘양(羊)’에 「봄들기 전(前)」·「바람과 구름」·「양」 등 13편, 제2부 ‘달·포도·잎사귀’에 「비」·「달」·「달·포도·잎사귀」 등 6편, 제3부 ‘풍경’에 「새벽」·「바다」·「아침 창(窓)에서」·「새로 3시(時)」 등 7편, 제4부 ‘초심초(初心抄)’에 「알밤」·「귀로」·「섬」·「선물」 4편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주로 목가적 전원을 서정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들로 이루어진 이 시집은 동심적인 청순함과 다소 감상적인 장만영의 초기 시적 특성들을 잘 보여준다. “어제밤 나의 벼개머리를 지키든 꿈들은/꿀벌들처럼 자꾸 유리창을 넘어간다.”와 같이 「아침 창에서」의 한 구절에서 보면 장만영은 이 시집에서 선명한 이미지와 관념을 형상화하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모든 소재들을 도시가 아닌 전원에서 구하고 있다는 점도 이 시집의 특징 중 하나인데 이렇듯 전원적이며 다소 감상적인 서정은 신석정(辛夕汀)의 작품 경향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를 다시 조형하여 선명한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점에서는 김광균(金光均) 등의 모더니스트와 통하고 있다.
“정밀(靜謐)이 고양이처럼 사랑스러히 잠자고 있는 깊은밤/책상(冊床)우 푸른 목장에 피어난 한떨기의 양귀비꽃-탁상전등이 붉고 고아라”로 시작되는 「새로 3시」에 대하여 최재서(崔載瑞)는 “이미지의 선명함과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추이하는 그 긴밀성과 신속성, 그리고 관념과 형상의 완전한 대응에 탄복한다.”고 평한 바 있다.
이로 볼 때 이 시집은 전원적 서정과 모더니즘적인 선명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