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인주(仁州: 지금의 仁川)에 속하였는데, 1418년(태종 18) 수원부에 편입시켰다. 수원 남쪽 30리라는 기록이나 현재의 위치로 보아 당시에 양간처는 수원 내에 있는 인천의 비월지(飛越地)였던 것으로 보인다.
뒤에 양간면(楊澗面)으로 바뀌었는데, 그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감미면(甘味面)·상홀면(床笏面)·토도면(土塗面)의 일부와 합쳐 양감면이 되었다.
양간처의 기능은 확실하지 않으나 이 지역이 경기평야에 속하고 부근에 사창(社倉)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농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양간처는 조선시대에 안성천의 지류인 내천(奈川) 유역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였다. 남북으로 수원과 진위를 연결하는 도로와 동서로 남양·용인·양지 등과 이어지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이곳에는 정송(貞松)의 옛 현이 있었으며, 건달산(建達山)에는 봉수가 있었다. 남양만과 아산만의 중간 지역에 있었으나 당시에는 남양만을 통하여 경창(京倉)과 이어졌다.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