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 지리
  • 지명
경기도 안성 지역의 옛 지명.
이칭
  • 이칭사복홀(沙伏忽), 적성(赤城)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양성읍지 미디어 정보

양성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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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안성 지역의 옛 지명.

내용

본래 고구려의 사복홀(沙伏忽)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적성(赤城)이라 고치고 백성군(白城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양성(陽城)으로 고쳤고, 현종 때 수주(水州)에 예속되었으며, 명종 때 양성현이 되어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고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속되었다. 1895년(고종 32) 공주부에 속하는 양성군(陽城郡)이 되었고, 다음해에 경기도의 양성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안성군에 편입되어 양성면이 되었다.

지명의 유래는 사복홀의 사복이 차음(借音)으로 ‘새밝이’어서 새밝골 또는 새밝성이 되어 이것이 양곡(陽谷) 또는 양성이 된 것이다. 적성의 적(赤)도 ‘밝’과 관계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치소(治所)가 진산인 천덕산(天德山)과 남쪽의 백운산(白雲山)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 외부와는 선원천(禪院川)을 건너 안성과 연결되었다. 서해안에 월경처인 괴태길곶(槐台吉串)이 있어 양성의 세곡(稅穀)은 이곳을 통하여 경창(京倉)으로 운송되었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 『지방행정구역발전사(地方行政區域發展史)』(내무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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