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에저또의 원래 명칭은 ‘연극을 살아 있는 예술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뜻에서 붙인 ‘인간의 집’이었다. 이 극단은 연극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확대하자는 취지로 창단되었으며, 연출가 방태수(方泰守)를 주축으로 김종찬(金鍾贊)·이규희(李圭熙)·김성룡(金成龍)·박장원(朴章元) 등으로 구성되었다.
에저또는 극한 상황에 부딪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내뱉는 ‘에’, ‘저’, ‘또’라는 감탄사를 극단 이름으로 붙였다. 이 극단은 언어부재의 인간상황을 극화하는 데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처음부터 무언극(無言劇)으로 출발하였다.
1967년 12월에는 ‘에저또 프로그램’이라는 이색적인 실험극 형태의 공연을 시도하여 눈길을 끌었다. 또한 연극공연 이외에 연극강좌·세미나·워크숍 개최 등 여러 연극 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창단 초기의 10년간은 실험적인 연극이나 젊은 연극운동을 주창하여 한국 최초의 언더그라운드 연극운동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무언극이나 가두극(街頭劇), 또는 거리의 각종 낙서를 채집하여 작가 없는 공동구성의 연극이나 즉흥극 등 실험적인 전위극을 발표하였다.
1972년에는 극단 전용의 소극장인 ‘에저또 소극장’을 마련하여 소극장운동을 벌이면서 마임(mime:몸짓)의 개발과 연극에 있어서의 마임도입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1973년에는 정신병원 환자들과 심리극인 오영진 작「무늬」를 만들기도 하였다.
1975년에는 연출가 이원경(李源庚)과 함께 소극장 창고극장을 건립하여 전위극이나 무언극을 활발하게 공연하였다. 창단된 지 10년이 지난 1977년 이후부터는 기성극단으로서 대극장 공연과 대한민국연극제 참가공연 등을 하면서 사실주의연극의 경향을 띤 극단의 면모를 보여왔다.
주요공연으로는 1966년 창립공연 방태수 작「춤추는 영웅들」, 1967년 방태수 작「판토마임」, 1969년「이 연극의 제목은 없습니다」, 1972년 윤조병(尹朝柄) 작「건널목 삽화」, 1974년 윤대성(尹大星) 작「목소리」, 1975년 진 클로드 반 이탤리(Jean-Claude van Itallie) 작「뱀」, 1976년 이강백(李康白) 작「미술관에서의 혼돈과 정리」, 1977년 윤조병 작「참새와 기관차」, 1979년 마리 엘렌 체이스(Mary Ellen Chase) 작「내 이름은 하비」, 1981년 윤조병 작「농토」, 1982년 윤조병 작「농녀(農女)」 등이 있다.
1973년에 제1회 젊은 연극제를 개최하여 본격적인 소극장운동을 펼쳤고, 극단소식을 실은 「연극수첩」을 제 2호까지 발행하였다. 제 1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참가하여「참새와 기관차」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제 5회 때에는「농토」로 작품상, 1982년 한국일보 연극상에서「농녀」로 대상을 수상하였다.
1997년에는 활동무대를 부산으로 옮겨, ‘에저또 바다 소극장’에서 1997년 유진규(柳鎭奎) 마임「억울한 도둑」,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 작「대머리 여가수」등을 공연하였다.
1999년 4월 제17회 부산연극제에「진짜 신파극」, 9월 춘천국제연극제에「무엇이 될꼬하니」, 2000년 제18회 부산연극제에「남자충동」, 2003년 제21회 부산연극제에「노르마」, 2004년 제22회 부산연극제에「미친키스」, 2005년 제23회 부산연극제에「욕망을 삼키다」, 2006년 제24회 부산연극제에「난(亂)」등으로 참가하였다.
또한 2006년 사단법인 봉생문화재단에서 봉생문화상, 부산예술인총연합회에서 공로상, 2007년 부산연극협회에서 공로상 등을 수상한바 있다.
2006년 부산으로 옮긴지 10주년을 맞은 극단 에저또는 남구 문현동 눌원빌딩 내 눌원소극장에 둥지를 틀었다.
전위예술운동과 실험극단으로서의 극단 에저또는 타의 추종을 불문하고 유일하게 전위예술운동과 실험연극을 했던 극단인 동시에, 최초로 소극장을 개관하고 극단 소유의 연극 전용소극장을 소유한 극단이었다. 또한 판토마임과 사이코드라마를 한국에 소개한 극단으로써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