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미평택지개발사업과 관련되어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원래 5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어 조사에 착수하였으나 고인돌 주변에서 원삼국시대의 집터와 토기가마, 삼국시대 돌덧널무덤이 더 조사되었다. 유적이 입지하고 있는 미평동은 해발 300m 내외의 산지 사이에 형성된 해발 50m 정도의 분지성 곡간평지에 있다. 고인돌은 해발 75m 정도의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을이 들어서고 밭으로 경작되는 지역이지만 지형상 산기슭에 해당된다. 고인돌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경사면에 5기가 자리하고 있는데 2호와 4호만 제자리에 가까울 뿐 나머지는 모두 이동되었다.
고인돌은 전형적인 남방식으로서 덮개돌의 무게는 1∼7톤 정도로 소형이며 평면 장방형을 띄는 것이 많다. 고임돌과 적석시설의 존재여부는 하부시설이 제대로 남아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2호와 4호로 보아 고임돌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며 적석시설도 거의 없거나 땅 위에 한 두겹으로 깐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덮개돌의 여부도 알 수 없다. 가장 잘 남아있는 4호도 덮개돌이 남서쪽으로 밀려있었는데 장방형이며 크기 210×137×89㎝, 무게 4톤이다. 돌덧널[石槨]은 덮개돌의 북쪽 들린 면 아래에서 확인되었는데 편평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지만 일부만 남아있으며, 크기는 (추)150×38×(잔)17㎝ 이다. 바닥은 자연석을 전면적으로 깔았으며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서북서-동남동이다. 돌덧널 중앙의 북벽쪽에에서 자루달린간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칼끝을 서쪽으로 향한 채 출토되었다. 2호는 이미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민무늬토기[無文土器] 편과 함께 손칼[刀子], 두드림무늬토기[打捺文土器]편이 수습되어 삼국시대의 돌방계[石室系]무덤으로 전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고인돌은 곡성 연화리, 광주 매월동 동산 고인돌에서도 확인되었다. 발굴된 고인돌은 모두 미평택지지구내의 녹지공간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원삼국시대의 집터는 타원형으로서 반파되고 남은 부분은 2.5m 정도이다. 내부에는 북쪽에 치우쳐 화덕자리가 있으며 회백색 격자문 단지를 비롯한 토기편들이 남아 있었다. 토기가마는 주거지와 같은 시기인 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반지하식 굴가마인데 소성실은 길이 2.35m, 최대너비 1.6m 이며, 연소실과 아궁이에 연결되어 있다. 가마와 그 주변에서는 토기 제작에 사용된 박자와 승석문·격자문이 시문된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돌덧널무덤은 2기로서 모두 파괴된 것인데 할석을 이용하여 길이 약 2m, 너비 약 0.8m, 높이 약 0.5m 규모로 축조하였으며 고배, 곡옥, 금박유리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이처럼 한 유적에서 청동기시대 이후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에 걸치는 다양한 유규가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현상이며 특히 돌덧널무덤은 전라남도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므로 앞으로 전라남도 남부지역의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